Make the Impossible Triangle Possible
 한경준       
  KBS University of California in Los Angeles 모임       
 
 

  웹진을 담당하시는 간사님께서 웹진에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하시면서 제시하신 글의 방향은 "학생, 남편, 아빠, 그리고 사역자 등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들 사이에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자 사는 삶에 대한 경험과 갈등"에 대해 나누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 자신이 얼마나 그러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살고자 고민하고 노력하는가 돌아보면 부끄럽지만, 요즘 몇 가지 일들을 계기로 마침 그러한 부분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 터라 부족하게나마 생각을 나누고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저는 지금 박사과정 학생이자, 한 사람의 남편으로 살아가고 있고, 28개월 된 아이의 아빠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UCLA 캠퍼스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셀 모임에 속해있으면서 셀 모임 인도를 위한 훈련을 받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또 다른 교회의 청년부 모임을 도와드리게 되었습니다. 제 아내도 학교를 다니며, 학교에서 일을 하며, 그리고 캠퍼스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저보다 훨씬 많은 일들을 감당하시며 바쁘게 사시는 분들이 많으시기에 감히 저 자신이 바쁘게 산다고는 말씀드리지 못하겠지만, 저 자신의 삶만 놓고 보았을 때에는 이전보다 훨씬 신경쓸 것이 많아지고 바빠진 것은 사실입니다. 아마 아기가 태어난 이후 2년 동안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삶이 바빠진 것보다 더 힘들면서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서로 다른 삶의 영역들 사이에서 충돌이 생기고 그 가운데에서 어쩔 수 없이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었습니다. 즉 몸은 하나이기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어서 한 쪽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 많아진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그 충돌의 한 쪽은 아기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아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저 역시도 아기로 인해 많은 제약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집을 비워야하는 컨퍼런스나 수련회의 경우 어떻게든 집을 비우는 시간이 "최소한"이 되도록 일정을 짜게 되었고 덕분에 밤 비행기를 타는 노하우가 늘었습니다. 전공과 관련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한 달간 타지에 있었을 때에는 공부에 집중하기보다 아내와 아기가 힘들어하지 않도록 신경쓰는 것이 마음의 더 큰 부담이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교제하는 자리에 아기를 데리고 간 경우에는 아기 때문에 서둘러 자리를 떠야 하거나, 몸은 그 자리에 있더라도 사람들과의 대화와 그들의 영혼의 상태에 집중하며 질적인 교제를 나눌 수 없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아기 때문에 다른 일들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마음이 힘든 경우도 있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습니다. 올해 KOSTA를 저 혼자 조장으로 참석했습니다.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유난히 예민한 아이가 잘 적응할지 의문이었고, 또 그 아이를 데리고 조장을 섬긴다는 것이 모두에게 너무 무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혼자 가족을 떠나 일주일간 KOSTA에 있으면서, 가족과 함께 있지 못하는 고통과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미안함이 생각보다 심하게 저를 억누르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마 아이가 있으신 분이라면 이러한 이야기들이 전혀 낯설거나 새롭게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은 이후에 단지 생활이 더 바빠진 것 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 도저히 양립 불가능한 두 영역 사이에서의 충돌로 인해 갈등을 겪고,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아픔을 겪고, 그러면서도 정작 돌아보면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은 자괴감이 들고, 그것도 모자라서 나의 우선순위와 배우자의 우선순위가 일치하지 않아 부부간의 갈등으로까지 번지는 삶의 수렁을 아마 누구나 한 번 쯤은 겪어보았을 것입니다. 학업 혹은 직업을 포기할 수는 없고, 가정과 육아를 내팽겨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역(앞으로 "사역"은 지역 교회나 KBS와 같은 직접 사역을 의미합니다)을 내려놓자니 마음에 걸리는, 이른바 "Impossible Triangle"속에서 몸은 지쳐가고 마음은 무거워지기 쉽습니다.

우리가 이원론적인 신앙관을 갖고 산다면 쉽게 갈등이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신앙과 학문(직장)의 통합을 추구하고 있고, 자녀양육 마저도 KBS와 같은 곳에서는 (약간은 장난스럽게나마) 또 하나의 제자양육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깥 사람"과 "안 사람"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으로 산다면 많은 문제가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해결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특히 유학생 혹은 이민자들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그러한 태도는 많은 경우에 자매들의 숨통을 막을 뿐만 아니라 형제들의 마음에 더욱 무거운 돌을 얹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소위 말하는 직접 사역과 간접 사역 사이의 통합을 잃지 않고 남녀 사이의 기계적인 역할 분담을 지양하면서도 삶의 다양한 영역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충돌과 갈등들을 어떻게 잘 관리할 수 있을까요?

물론 여기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고, 아마도 놀라운 비법같은 것도 없을 듯 합니다. 저 역시 아직 헤매면서 그 길을 찾아나가고 있는 과정 중에 있지만, 부족하게나마 지난 2년간 좌충우돌하면서 생각하게 된 것들을 나누는 것이 저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혹은 그 상황을 앞으로 겪을 다른 분들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가 각자의 사역을 따로 한다는 의식을 버리고 같은 사역을 서로 역할을 나누어서 한다는 의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사역이 자신의 사역의 연장선에 있다고 간주하는 태도는 중요합니다. 자녀가 있는 보통의 경우라면, 상대방이 사역을 하는 동안에 자신은 집에서 자녀를 돌보아야 하는데, 저희 집 같은 경우도 이러한 순서 교대가 거의 매일 저녁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이론적"으로는 자녀를 돌보면서 그 사이 사역하고 있을 배우자를 향한 중보의 기도가 이어져야겠지만, 때로는 그 대신 스트레스와 불만이 쌓여져 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발견하게 되는 것은 내가 배우자의 사역을 마치 나와는 관계없는 일처럼 여길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 보시기에도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부 관계에 필요없는 긴장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저희 부부의 사역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각자가 섬기는 캠퍼스(UCLA, SMC)의 성경공부가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물론 같은 KBS의 그룹들이지만 서로 다른 캠퍼스이다보니 따로 사역을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두 그룹 사이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런 구별이 없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저는 제 그룹을 섬기는 데에 있어 제 아내의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제 상황이나 성격상 가까이서 돌보기 힘든 지체가 있을 때, 또 문제의 성격상 제가 건드리기 힘든 문제가 있을 때, 때로는 제 아내가 저 대신 다가갈 수 있고 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각각의 그룹을 각자에게 따로 주신 것이 아니라, 이 지역의 영혼들을 우리 가정에 함께 맡기셨다는 생각을 할 때, 서로의 사역을 더욱 인정해주고 서로 도와줄 수 있고, 또 사역과 육아를 대립의 구도가 아니라 병렬의 구도로 볼수 있게 됩니다.

결국 자신과 배우자의 사역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것을 통합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 십자가를 통해 나의 사역과 배우자의 사역을 바라볼 때, 그것들이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목표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사역이든 학업(직업)이든 가정이든, 욕심을 버리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욕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저도 가끔 "내가 애 아빠만 아니면 더 활발히 사역을 할 수 있을텐데" 혹은 "더 집중해서 공부를 할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사역 혹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학업을 향한 열정일까요, 아니면 제 욕심일까요? 모르지만 욕심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과거의 내 모습과의 비교에서 오는 욕심, 현재의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 오는 욕심, 아니면 단지 힘든 현재의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 오는 욕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짐을 주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계속해서 "사역 – 학업(직업) – 가정"의 삼각 구도 안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힘들어 한다면, 그것은 내가 어디엔가 필요 이상의 욕심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정도의 이상의 것을 얻고자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조화와 균형을 깨뜨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나의 삶의 상황이 그 촘촘한 삼각 구도 안으로 들어갈 수록 열정과 욕심, 열심과 과잉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가 더욱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돌아가야 합니다. 내가 학업(직업)의 영역에서, 사역의 영역에서, 그리고 가정의 영역에서 들고 있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인지, 아니면 나의 깃발인지 곰곰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말들이 자신의 불성실하고 무기력한 태도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는 위험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정과 욕심을 구별하여 욕심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삼각 구도 사이에서 힘들고 정신없게 살아가다가 문득문득 들게 되는 생각은, 나 자신은 괜찮다고 하더라도 "내 자식은 이게 무슨 고생인가"하는 생각입니다. 사역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많이 갖지 못해 미안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사역과 관련된 자리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괜한 고생을 시키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합니다. 저도 몇 주 전에 교회에서 젊은 부부 그룹의 수련회가 있었는데, 아주 편한 환경에서 아주 여유로운 일정으로 수련회를 하고 왔음에도 그것이 무리가 되었는지 아이가 갔다와서 하루 이틀 아팠습니다. 그럴 때면 당연히 부모로서는 마음이 아프고 괜히 미안해집니다.

그러나 자녀를 두고 살아가면서 늘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자녀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부모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믿음의 유산이야말로 내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것이고, 위의 일들이 그러한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면, 때로는 아이의 불편함과 아이의 서운한 마음까지도 하나님께 내어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이삭을 바치라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음성이 지금 나에게는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신지, 우리는 지혜로우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아이를 맡겨 주셨기에 부모로서 최선을 다해서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인생에서 아이가 최우선 순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가정의 중심에 서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지 자녀가 아닙니다.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아이가 자신의 우상이 되어 십자가를 제치고 가정의 중심에 자리를 잡지 않도록 우리는 비둘기의 순결함과 뱀의 지혜를 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리모트 지역에서 KBS를 섬기고 있어서 KBS의 많은 분들과 직접 교제하며 지내고 있지는 못하지만, 언뜻 보더라도 이제는 저와 같이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기르기 시작한 지체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싱글일 때와 결혼했을 때, 그리고 자녀를 낳았을 때의 삶은 각각 다른 패턴을 갖고 있고 우리에게 다른 마음가짐과 습관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의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갈 때마다 버려야 할 것들, 그리고 새롭게 적응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지금의 저와 같이 어린 자녀를 둔 때에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삼각 구도 안에서 나 자신이 영적, 육적으로 피폐해지지 않으면서 그 삶의 세 영역의 조화와 균형을 지켜나가도록 살아가는 것이 큰 도전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쓰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그 삼각 구도 안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많은 동역자들이 생각났습니다. 그저 여기에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 하나 더 있다는 것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 자신이 지난 2년간 갈등하면서 조금씩 주워담아온 생각들이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집: 김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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