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제작 후기
 
 

 고지현(디자인)

어느날 오후 해야 할 일들에 짖눌려 무거움 한숨을 내쉬며 저녁을 차리고 아이와 씨름하고있는 나를 보고, 남편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아이를 데리고 재우러 들어갔습니다. 크게 쉼호흡을 한번 하며 밀려오는 눈물을 참고, 그동안 밀려왔던 웹진 디자인을 하려 컴퓨터 앞에 앉았을 때, 남편의 글을 우연히 읽게되었습니다. (한경준 'Make the Impossible Triangle Possible' 글 참고.) 그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 참았던 눈물이 나왔습니다. 어느덧 남편을 따라 미국에 온지 4년이란 시간이 지났습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F-2로 마땅히 해야할 일도 없었고 무엇을 해야할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소속감도 없이 나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보다는 '한경준씨 아내'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요즘은 학교에서는 학생의 이름으로 공부와 일을 하며, 또한 인턴 일을, 엄마의 이름으로는 한 아이를 키우고, 아내의 이름으로 가정을 돌보며, 양육자의 이름으로 KBS에서 허락하신 영혼들을 말씀으로 섬기는 가운데, 다양한 이름을 안고 때로는 주체할 수 없는 감사함으로, 하지만 때로는 양립 불가능한 일들 가운데서 혼란을 경험하고 있는 삶을 살아가고있습니다. 웹진을 디자인하며, 그 안에 고백한 KBS 식구들의 삶을 바라보며, 내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다시금 잠잠히 돌아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남편의 마음과 생각을 글을 통해 더욱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각자의 일을 하기 위해 긴장감 속에서 자신의 것을 '포기' 해야하는 불편한 관계가 아닌, 하나님의 하나된 사역으로 서로 중보하며 협력하는 사랑의 동역 관계라는 것을 기억하며 마음에 새깁니다. 나의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마음은 여러가지 감당해야하는 이름들을 내 어깨에 힘겹게 지고가는 것이 아닌 오직 한 가지 이름, '하나님의 자녀' 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겸손함으로 가족과 이웃을 섬기며 잠잠히 나아가는것, 이것이 내 안에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나라' 라는 것을 깨닫게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그 기업을 풍성한 영광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깨닫게 하셔서 우리 삶에서 증거되 나타나기를 두손 모아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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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시은(코딩)

어딘가에 남겨질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원래부터 글솜씨가 없다고 믿고 살아온 나로서, 게다가 내 한국말은 계속 더 어리숙해지는것 같고... 그럼에도 함께 웹진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써놓은 글을 읽으면서 나도 동참한다는 위로를 얻을수 있기 때문이었던것 같다. 영적으로나 생활 가운데서 잔잔한 호수처럼 순탄하기만 했던 나의 삶에서, 하나님께서는 지난 몇 개월간 내 삶의 큰 변화와 함께 나로 하여금 주님만을 바라보도록 하는 훈련을 허락하셨다. 입술로만 고백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나의 삶의 일부분이라도 하나님의 진정한 통치하심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위한 훈련이라고 느껴진다. 다른 분들의 글을 읽고 또 공감하면서, 웹진 코딩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주님의 자녀들에게 원하시는 진한 교제와 사랑을 다시 한번 느낄수가 있다. 오늘 하루 나의 삶속에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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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일(취재)

저는 옛날부터 웹진의 글을 보며 은혜를 많이 받았었습니다. 도전이 되는 글들도 많았고 격려가 되는 글, 배움이 되는 글등...읽으며 제가 얻는것이 많았습니다. 특히, 언젠가 어떤 간사님의 "사랑"에 대한 글은 제 마음에 깊은 감동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웹진이 나오지 않는것이 마음 아파 제가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웹진에 대해 아는것이 아무것도 없으면서 그냥 그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 문희 간사님께 웹진 작업에 참여하기를 원한다고 자원했습니다. 막상 자원은 했으나 웹진 관련 일을 하면서 다른일로 바빠서 제가 기대한 만큼 웹진일에 많은 헌신을 못한점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좋았던점은 제가 인터뷰한 두분의 간사님들 (이화정, 임성우)과 깊은 말씀을 나눌수 있었고, 제가 많은 점을 배우고 얻을수 있었던 점입니다. 두 분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KBS간사님들은 역시"라는 마음이 더 깊어졌고, 자신들의 각자 현재 삶에서 조용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시는 모습을 보며 도전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앞으로 웹진을 통해서 더 많은 분들이 삶을 나누고 은혜를 나눌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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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진(편집)

대개 왜 글을 쓰는 것을 어렵고 부담스럽게 여기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글을 쓰기 위해 사고하고 정리하는 과정 자체가 노동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내용뿐만 아니라 태도와 표정으로도 의사를 소통할 수 있는 "말"과 달리, 감정과 태도나 드러나기 어렵고 또한 기록으로 남는다는 조건을 가진 "글"이라는 수단은 제약사항이 많은 만큼,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선뜻 나의 생각을 꺼내어놓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동안 나를 반추하고 흩어진 생각들을 한데로 모을 수 있다는 점, 정리되고 정제된 언어로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 말보다는 나의 결과물에 무게와 책임을 더 실어야 한다는 점, 같은 혹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두고두고 의견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은 "글"만이 가진 힘일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각자의 삶을 소재로 같은 주제를 고민하는 이들과 글을 통해 생각을 나누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자신들의 일면을 솔직하게 보여준 형제 자매들의 삶을 단순한 호기심만 가지고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라는 큰 나무에 깃드는 한 마리 공중의 새와 같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또 우리 모두를 보듬어주는 큰 나무안에서 함께 동거하는 것이 이렇게 글을 나누는 의미가 될 것이다. 우리의 고민이 더 성숙하고 진지해질수록 껍질처럼 덮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 하나님 나라의 피상성이, 모든 한계를 넘어 현재로 실제로 경험되기를 기대하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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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희(기획,편집)

신앙에 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면 아주 힘든 일이다. 그 모습이 너무 빨리 변하기 때문에, 글을 써서 공개적으로 다른이들이 볼수 있는 자리에 남겨둔다는 사실이 창피하다. 때로는 일기로 쓰는것조차 어려운데. 그 시점에서는 절실한 것이라도, 후에 들춰보기에는 유치 찬란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중학생때 누군가에게 써두고 보내지 못한 연애편지를 성인이 된 후 꺼내보았을때 느껴지는 민망함과 같다고 할까. 내 외모, 기본 성격, 사회 현상에 대한 나의 시각은 아주 서서히 변화하지만, 나의 신앙생활과 내면은 더 빨리 변화하는것 같다. 오늘 내가 무엇을 쓰고, 2년뒤에 돌아봤을때, 얼마나 창피할까 생각하면 무엇인가를 써서 내놓기가 힘들다. 2000년 가을 처음으로 "무화과 나무아래"가 나왔다. 그때 내가 쓴 편집 후기 제목을 보니 (차마 글은 읽어보지 못했다) 대단한 혼돈의 시기를 마치고 (그 시점에서 나는 혼돈의 시기를 지나왔다고 생각했던것 같음) 난 뒤였던 모양이다. 요번에 글을 쓰면서 나는 또다시 최근 겪고 있는 "혼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내 인생은 뭐가 이렇게 늘 혼돈스러운가 싶기도 하다. 그때 무엇이 혼돈스러웠던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It was a joke" 라는 생각이 드는것을 보니, 후에 나는 지금을 돌아보며 "It was a joke"하겠구나 싶고, 그렇게 늙는가보다. 그래서, 웹진에 글을 쓰느것은 즐겁지만 두렵다. 한때 편집 후기 자체를 생략하기도 했었다. 이번에도 길게 못 쓰겠어서 다들 같이 쓰자고 제안했다. 그래도 쓰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내 인생 여정의 바로 이 시점에서 나를, 나의 생각과 마음을 들여다 보며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가늠하고 다짐해보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내년 이맘때 그리고 5년뒤에 나는 또 다른 사람이겠지만 말이다. 중학생때 써두었던 연애 편지가 지금 볼때 유치한 것이지만, 그래도 들춰보면서, 나는 그때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웃음지을수 있는 것이 소중하기에. 하나님께 나의 연애 편지를 썼다. 쓰면서 한번 더 생각하고, 그를 향한 나의 여정을 계속한다.


 

집: 김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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