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의 통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
 이일형       
 KBS - 대표간사      
 
 

이일형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편 1:1-3)

얼마전 아침 라디오 NPR 뉴스에 한 환자의 팔 절단 수술을 한 의사와의 인터뷰가 방송되었다. 그 환자는 수년간 왼쪽 손이 꼬여들며 극심한 통증으로 고생하다가 병균이 퍼져 결국은 팔을 절단할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팔을 절단한 후에도 있지도 않은 손의 통증으로 인해 계속 시달렸다는 것이다. 더 답답한 것은 과거에는 손이 꼬여 들어가며 아플때 손을 마사지하고 약을 먹으면 통증이 조금 가라앉곤 했는데, 이제는 있지도 않은 손을 치료할 수가 없어 통증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즉 그 환자의 통증이 너무 오랜 세월 지속됨에 따라 뇌에 입력된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 환자를 안타깝게 여긴 의사는 결국 비책을 세웠다고 한다. 몇 개의 거울들을 이용해서 그 환자가 자신을 거울로 볼 때 오른 손이 마치 절단된 왼손처럼 보이도록 착시를 유도했다고 한다. 그런후 오른 손을 꼬이게 하며 통증을 인위적으로 가하다가 점진적으로 통증을 없애며 꼬인 손을 펴주었다. 뇌에서는 그 오른손을 보면서 있지도 않은 왼손에서 오던 통증이 점진적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 체험을 하게 되었고, 이 방법을 몇 주 계속 반복하면서 결국 완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의사는 자신이 있지도 않은 신체 부위의 통증을 없앤 첫 의사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며 웃었다.

우리의 뇌는 몸의 각 마디로부터 전달되어 오는 신경을 통하여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며 이에 대처해 나간다. 그러나 이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경우들이 있다. 즉 뇌 자체가 잘못되었을 경우 (신경을 통하여 전달된 정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때), 혹은 신경의 전달이 잘못된 경우 (즉 있는 통증이 전달이 안되거나 없는 통증이 잘못 전달되는 경우) 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은 육체적인 몸만을 가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실체를 성경에서는 흔히 '영', '혼', '육' 으로 구분한다. 이는 한 인간이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뜻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실체가 세가지 다른 영역에서 표현되고 있다는 뜻이다. 육체는 자연이라는 영역, 영은 영의 세계라는 영역, 그리고 혼은 영과 육의 세계 안에서 형성된 생각의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의식은 바로 이 생각의 세계에 자리잡고 있다.

인간의 뇌는 육체의 세계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육체를 통하여 들어오는 세상의 모든 정보가 뇌의 '물리적 차원'에서 정리될 때 우리의 의식은 이를 흡수한다. 바로 이 과정을 우리는 '생각한다' 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생각의 세계는 영과 육체의 세계로 말미암아 형성된 세상이기 때문에, 육체의 세계로부터 오는 정보만으로는 우리의 정신세계의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상태에서는 우리의 의식이 영의 영역을 올바로 인지할 수 없고 마치 장님이 지팡이를 가지고 어렴풋이 길을 찾아가는 정도의 간접적인 인식만이 가능하다.

영적 세상을 얼마나 흡수하고 있느냐에 따라 생각의 세상에서 우리의 의식의 깊이가 결정된다. 사람은 제각각 다른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각자 다른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분명히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직장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한 사건이나 경험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것이 너무 다른 경우가 많다. 이는 각자 매 순간 체험하는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으며 또한 어떤 생각의 용량과 기능 (건강상태) 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의식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이일형율법은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 대한 묘사이다. 생각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현상에 대한 정보 처리 과정이라고 한다면 묵상은 영의 세계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하는 활동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즉 생각은 묵상의 부분집합 (Subset) 이다.

묵상하지 않으면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살고 있지 않은 것과 같다.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극히 일부분만 이해하며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묵상의 기능을 활용하지 않고 인생을 살려는 사람은 마치 학생이 공부하지 않고 배우려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묵상하는 사람은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의 고백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편집: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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