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양식이 되는 삶
 지혜경       
 KBS - Texas      
 
 

지혜경나는 지난 2001년 미국으로 유학온 이후의 삶을 '광야'라고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지금 살고있는 텍사스의 지형이 마치 모래바람이 부는 황량한 광야를 닮아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유학생활하는 동안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하나님 외에는 철저히 혼자일 수 밖에 없었던 내 삶이 마치 광야를 걷는 듯 했기 때문이다.

신앙이 있으신 부모님 아래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 때 갔던 수련회에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찬양을 부르다가 내가 죄인임을 깨닫게 되면서 예수님을 처음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어릴적부터 하나님은 날 사랑하는 분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신기하게도 성경에 나오는 모든 말씀들이 그것이 어떤 내용이든 의심없이 다 믿어졌다. 내 삶은 어떤 큰 신앙적 고비없이 순탄하게, 항상 집-학교-교회 이 세 장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예배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잔잔하게 때론 강하게 항상 나를 만나주셨고, 그러는 가운데 스스로 '나는 좋은 믿음의 소유자'라고 여기는 교만한 자아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이나 물어보신 그 질문을 나에게 동일하게 하신다면, 주저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순종'에 준비된 사람이라고 확신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렇지만 미국으로 유학을 와보니 한국과는 전혀 다른 신앙적 환경이 나를 놀라게 했다. 여러모로 마치 내가 광야 한 가운데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순종은 커녕 헌신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마음에 부담감이 밀려왔다. 유학초기에는 그동안 나름대로 뜨거웠다고 자부했던 내 믿음을 붙잡고 상황에 관계없이 믿음을 지키려고 참 많이 발버둥치며 살았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습관적인 신앙에 익숙해졌고 하나님은 내게 있어서 그저 무사히 학위를 마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으로 그분의 존재 가치가 떨어져 버렸다.

어려울 때마다 말씀을 찾아가며 붙들고 기도했지만, 말씀으로부터 위로와 힘을 얻으면 다시 말씀을 떠나서 살았다. 힘들때마다 성경을 열면 어쩌면 그렇게도 족집게처럼 내가 처한 상황에 맞는 말씀을 잘 찾게 되던지, 마치 부적과도 같이 그 말씀속에 내 감정을 이입해서 열심히 기도하고나면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것을 매번 경험했다. 그렇게 내 삶에 있어서 말씀은 단지 아플때만 먹는 약과 같을 뿐, 말씀이 양식이 되는 삶을 살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작년에 참석했던 코스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영생의 감격에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삶에서 여러가지 모습으로 헌신하고 제자된 삶을 살아가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모태신앙이라 자부하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늦게 신앙생활을 시작하셨다는 분들이 어쩌면 저렇게 뜨거울 수 있는 것일까, 나에게는 마치 이솝우화처럼 느껴지는 성경말씀이 왜 저분들의 삶에서는 "살아있는 복음"이 될 수 있을까, 어째서 내 가슴속에서는 그 말씀이 꿈틀대지 않는 것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스스로 신앙이 깊다고 자부했던 내 자아에 대한 의심이 시작되었다.

"이제 제발 내가 널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내 아들 예수의 피흘린 그 보혈의 값, 그 복음에 합당한 적극적이고 거룩한 반응을 네 삶 가운데 행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더이상 못 들은 척 외면할 수 없었다. 그러던 가운데 KBS를 알게 되고 말씀묵상훈련에 관한 소식을 듣고 참여하게 되었지만, 지난 가을에 시작한 말씀묵상훈련은 내게 그리 쉬운것만은 아니었다. 피아노를 전공한 나는 어릴때부터 예배 반주자로 섬겨왔던터라 그동안 수없이 많은 예배에서 설교를 들어왔고, 그렇게 이미 잘 알고있는 말씀가운데 숨겨져 있는, 그러나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말씀을 찾아내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또한 말씀을 깊이 곱씹어 묵상하고 그것을 내 삶으로 끌어내어 적용하며 살아내는데까지, 그 말씀이 내 삶과 실제적으로 부딪혀서 일어나는 struggle들도 많이 경험하게 되었다.

그 중 가장 큰 struggle은 그동안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심지굳게 자리잡고 있었던 자아… 즉 모태신앙인으로서의 매너리즘을 깨는 일이었다. 특히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한 사도바울의 삶과 유다서의 말씀은 그동안 내가 나름대로 확신하고 자만했던 내 믿음이 지극히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철저히 깨닫게 해주었다.

유다가 서신서를 통해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유1:3)고 한 권면의 말씀을 읽을 때 내 가슴속에서 무엇인가가 방망이질 치는 것을 느꼈고, 그 믿음의 도를 지키기 위해 유다가 일러준 말씀들 중에 "Build yourselves up in your most holy faith" (유1:20) 라는 구절은 내 시선을 멈추게하고 더이상 말씀을 읽어내려갈 수 없게 만들었다. '가장 거룩한 믿음'위에 나 자신을 건축해야 한다는 최상급의 표현을 통해 권면하는 그 말씀은, 과연 그동안 내가 유지해 온 믿음이 어떤 것이었고, 나는 그동안 그 믿음을 위해 얼만큼 힘써 싸워왔는가 뒤돌아보게 만들었다. 구원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단번에 거저얻은 크고도 귀한 선물이지만, 인생 가운데 치열한 믿음의 경주를 달려 그 구원에 이르는 것이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할 사명임을 말씀가운데 깊이 가르쳐 주셨다. 또한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의식하며 그분의 임재 아래 살아가는 삶은 말씀과 성령님의 지배 아래서만 가능한 것임을 가르쳐 주시면서, 늘 넘어지고 연약한 나를 아시는 주님께서는 그 선한 싸움의 경주를 나 혼자 가게하시는 것이 아니라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유 1:24) 와 함께 가는 것"이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동행이 약속된 말씀은 나를 위로와 감격으로 벅차게 만들었다.

말씀묵상훈련의 마지막에 가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날 위해 돌아가셔서 영생에 이르게 하신 그 모든 일들은 사랑, 바로 그 하나 때문이라는 결론으로 나를 이끄셨다. 죽기까지 죄를 미워하신 십가가 사건은 아무런 이유나 댓가없이 그저 나를 사랑하시기에 그리하신 것이지, 그것이 나를 위한 일 (task) 이 아니었다라는 아버지의 마음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 내가 바로 그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말씀을 읽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되는 삶도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도 깨닫게 하셨다. 그것은 거저주신 아버지의 사랑과 구원의 선물에 응답해드리는 내 삶의 작은 몸부림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인 우리의 인생 가운데 가장 행복한 선택은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복음의 길을 날마다 더 깊이 알아가고 그 길로의 순종을 선택하는 것과, 그 길을 향해 우리의 삶이 온전하게 집중되어지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거룩한 반응을 위하여 날마다 분투하는 영적인 싸움에 담대하고도 거침없이 나아가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하여 볼품없고 연약한 우리의 삶이 살아있는 복음으로 인하여 존귀하고 거룩해지며, 결국엔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삶으로 또 체질로 경험되어 진정으로 '말씀이 양식이 되는 삶'을 살게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이제 나의 지난 유학생활만을 광야라 부르고 싶지 않다. 하나님을 face to face로 마주하기 전까지, 우리의 인생 여정은 어찌보면 모두 나그네 된 광야의 삶을 산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 훗날 내 삶을 뒤돌아 보았을 때 그 어느 작은 한 부분이라도 말씀이 되신 하나님 없이는 감히 설명되어질 수 없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홀로이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깊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그 광야의 때를 내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신 8:2-3, 16)

 

편집: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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