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가는 길
 김문희       
 KBS - 웹진      
 
 

김문희작년 내내 특히 새해를 맞이하는 연말 무렵 내 마음은 참으로 무거웠다. 일과 관계를 포함한 인생에 대해 좌절감과 혼돈스러움이 들었고, 그러다보니 나의 모습 (성격, 자질, 기질, 감정, 생각)과 내가 여태까지 걸어온 길 (공부, 직업, 소명) 에 대한 회의마저 들었다. 긴 가방끈에 비해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막상 의미를 찾고 보람을 느끼며 잘 할 수 있는 일이 찾아질것 같지 않아 불안했고, 그러다보니 내 욕심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닐까, 지금이라도 진로를 바꿔야 할까 하는 회의마저 들었다. 더 늦기 전에 뜻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마음에 마음이 분주했다. 막연하게나마 뭔가 의미있고 보람있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으로 공부했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여기까지 달려 왔건만, 대단한 능력이 갖춰진 것 같지도 않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분명한 확신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인지 사용하실 것인지 의심했고, 쓸데없이 길게 해놓은 것 같은 가방끈에 대한 죄책감은 나를 눌렀고, 내 욕심이었던가 고민했고, 그래서 일에 관한 방향을 조금씩 잡아가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분야의 일에도 눈을 돌렸다. "인생의 방향을 다르게 잡았더라면 어땠을까"를 상상하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겠지, 아니 너무 늦었을까"를 고민했다. 한마디로 혼란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한편, 살면서 의미있고 보람있는 일을 즐겁게 하고픈 갈망은 깊었고 이런 온갖 마음은 나를 눌렀다.

관계의 어려움도 경험했다. 사랑하지만 서로의 연약함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적당히 경쟁하고, 적당히 질투하고, 서로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격려하고 돕기보다는, 세상과도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어느새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버린 그런 관계가 되어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내 안에도 존재하는 세상을 향한 마음을 보아야 했고,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면서 어려움과 혼란에 짓눌려 있었다. 내 안에도 세상을 향한 마음이 있지만, 그래도 두 하나님을 섬길 수는 없는 것이었고, 진실하게 하나님을 향해 있는 이들과의 관계에 대해 목말라 했다. 갈급했다. 그런것 없이 혼자 하나님께로 나아가기에 나는 너무 약한 사람이었고, 지금의 관계를 변화시킬 힘도 지혜도 내게는 없었다. 고통스러웠다.

나는 한 신앙의 멘토의 도움으로 내 삶에서 이런 좌절과 혼돈이, 사실은 내 안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갈망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내가 일에서 의미와 보람을 찾는 것도, 인간 관계에서 깊이와 진실을 추구하는 것도, 사실은 내 안에 하나님을 더 깊이 진실되게 만나고자 하는 몸부림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즉시 나의 시선을 불만스러운 일이나 관계로부터 거두어 하나님께로 향했다. 아주 절박했다. 그 외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고, 갈급함때문에 새벽까지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쩌면 잠 못 이루던 밤들조차도 하나님의 인도하셨음이었을까. 하나님을 향해 깊이 나가기 위해 올해의 인생의 목표를 그렇게 정하고 그에 필요한 아주 작은 한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불과 두 달도 안되어 하나님은 내 인생을 놀랍게 바꾸셨다.

하나님께 가는 길은 먼저 나를 힘들게 하는 사건들로부터 시선을 거두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즉 방향 전환이었는데, 구체적으로는 나의 내면을 하나님앞에서 정직하게 바라보고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일과 관계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기대, 불만족, 힘듦, 그것들을 둘러싼 내 마음, 생각, 감정, 가치,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나의 내면을 정직하게 만나고, 그 모습으로 하나님앞에 서야했다. 하나님께 가기 위해 말씀 묵상과 기도는 물론 필수였고, 그 외에도 책을 통해 깊은 영성가들이 만난 하나님을 만나기도 했다. 그럴수록 하나님은 나를 더 깊이 만나기 위해 내 안의 감정과 상처들을 깊숙히 만지기를 원하셨다. 이미 수년전 나의 의지, 외면의 모습과 선택의 방식으로 나는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했는데, 바로 그 하나님은 나의 내면과 감정, 깊은 존재의 주인마저도 되기를 원하셨다. 내 존재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셔서 그것마저 당신의 것이라고 도장 찍기를 원하셨다. 내안의 감정과 상처 즉, 내 존재의 어두움이 내가 하나님안에서 자유롭고 풍요롭게 사는 길, 즉 하나님을 알고 누리는 길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면의 연약함에 직면했을 때 내게는 두가지 선택이 있었다. 나의 내면의 연약함과 어두움을 무시하고 적당히 살것인가, 아니면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여 의지적으로 그 모습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설 것인가. 나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는 하나님은 아무것도 강제로 진행하지 않으셨고, 매 순간 내게 결정권을 주셨다. 하나님에 대한 절박함때문에 이번에는 선택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 모습들을 그대로 가지고 나아가 내가 만난 예수님은 내가 이전에는 알지 못하던 가장 파워풀한 분이었다. 하나님은 나의 어두움을 나를 가장 파워풀하게 만나시는 도구로 사용하셨다. 세상의 기준으로 특별히 욕먹을 이유없이 그럭저럭 괜찮았던 모습으로 만났던 하나님에 비해, 쓰레기 같은 내 모습으로 만난 하나님은 가장 따뜻하고 가장 섬세하게 그리고 가장 파워풀하게 나를 확 받아주시는 분이었다. 내가 만난 가장 놀라운 예수님의 모습이었다. 아, 정말 좋은 나의 예수님!

한때 자신의 모습에 집중하는 것은 하나님께로 시선을 돌리지 못하고 자기의 연약함에 매여있는 수준 낮은 신앙의 단계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모습에서 시선을 거두어 하나님께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고 최근 읽고 있는 책에 쓰여있기도 하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나의 내면을 정직히 바라보는 것은 이기적이거나 미성숙한 모습이 아니라, 더 깊은 나의 존재로부터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하나님은 나를 성숙하고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나의 내면 깊숙한 곳을 만지기를 원하셨다. 젠틀한 하나님은 그 작업을 혼자 하지 않으셨고 내가 나의 의지로 준비되기까지 기다리셨다. 그래서 내 자유 의지로 내면을 바라보고, 내 의지로 그 모습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는 일이 필요했다. 내 마음, 감정, 상처, 그리고 내면 깊숙히 들어가 정직하게 내 모습을 만났을 때,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만났을때, 내가 향할 곳은 오로지 십자가 뿐이었다. 예수님은 오래전 이미 받아들이신 나의 모습인데도, 내가 받아들이지 못했던 나의 모습, 그래서 자유롭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바라보았고, 그때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용납하지 못하는 내 모습 때문에 십자가를 바라만 볼 뿐, 두 손을 벌리지조차 않았다. 예수님이 "나는 이미 다 받아들였다" 하셨지만, 나는 "나도 알아요, 그래도 나는 받아들일수 없어요"하고 버텼던 것이다. 그런 나의 모습을 향해 예수님이 다가오셨다. 그분은 늘 그런 분이었다. 기다리시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다가와서 나를 확 끌어안는 분. 나의 가장 우울한 모습으로 만난 예수님은 이전에 내가 알던 예수님의 어떤 모습보다도 가장 찬란하고 눈부신 빛이셨으며, 그 분의 찬란한 빛은 내 존재의 어두운 부분을 빛으로 바꾸셨다. 그렇게 만난 예수님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섬세하고 아주 자상하고 따뜻하면서도 파워풀한 분이었다. 내 안에 회색빛을 띠고 있던 존재는 빛이 되었다. 그분의 십자가의 빛 때문에 나도 빛이 되었다. 나를 빛이라 불러주셨다. 그렇게 나는 그분의 품에 안겼다.

진실되게 하나님을 찾는 관계들에 대해서도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동참하여 한 목표를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 관계들을 하나씩 둘씩 허락하시기 시작했다. 보지 못했을 뿐 이미 주변에 존재하고 있던 관계중 그런 관계들을 발견하게 하기도 하셨고, 새로운 관계들로 인도하시기도 하셨다. 더 깊이 하나님을 향해 가기 위해 아직도 구체적으로 구하는 것들이 있지만, 이미 일은 시작되었다. 여러 계기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구하는 대로 다 주신다는 것을 체험했다. 아니 이미 준비해놓으시고 내가 준비될때까지 기다리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말 놀랍고 섬세한 분!

혼돈의 수렁에서 허우적대던 나는 불과 한달반 만에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에서 여유롭게 헤엄치고 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잘 아는 분인지, 내가 기억하는 내 모습보다도 얼마나 더 세심하게 나를 기억하는 분인지, 내가 가진 것과 내게 없는 것들을 얼마나 더 잘 알고 계신 분인지 알게 되었다. 내게 주신 것들은 그분의 때에 따라 다 사용하실 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내게 허락하지 않으신 것은 오로지 하나님만을 자랑하게 하려고 하신 이유라는 것도 알게되었다. 이 모든 것을 머리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깨달았다. 더이상 서둘러 달려가 뭔가 확실한 것을 이루어 내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분주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이미 그분이 내 안에서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시작하셨고, 때에 따라 필요한대로 하나님께서 다 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요, 줄줄이 긴 가방끈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보면 제대로 딱히 쓸곳이 없는 내 지식과 경험도 하나님께서 필요와 때에 따라 쓰실 것이라는 확신과 방향 감각도 생겼다. 더 늦기 전에 뭔가 보람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불안감에 이제는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더이상 "빵집을 차릴까, 꽃집을 차릴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이미 내 안에서 하나님께서 필요한 일을 하고 계시며, 나는 그분 품에서 자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불안감에서 자유함을, 혼돈에서 방향을 찾았다.

불과 두달도 안되어 하나님은 내 인생을 놀라운 방법으로 정리하셨다. 이제 나는 그분이 내게 허락하신 것들을 즐기면서, 그분의 나에 대한 사랑과 계획을 확신하면서, 내게 맡기신 일들을 열심히 감당하며, 한 발짝 한 발짝 가기만 하면 된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분의 인도함에 따라. 그분의 템포와 박자에 따라. 내 인생을 걸만한 의미있는 일은 내가 찾아서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을 향해 신실하게 서있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자연스럽게 하시는 일이라는 것도 배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해 엄청난 자유함을 얻었다.

그분은 과연 놀라운 분이었다.

 

편집: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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