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추천 : 묵상의 능력 - 토마스 머튼
 김혜진       
 KBS - Montgomery College      
 
 

묵상의 능력 - 토마스 머튼묵상 자체가 반추의 시간을 필연적으로 요구하듯이, 이 책 자체 또한 한 줄 한 줄 읽어내려가기 위해 충분한 사색을 필요로 한다. 한국어 제목은 묵상의 능력이지만, 영어제목은 Inner Experience, 부제로는 Notes on Contemplation, 즉 영적인 여정에 관한 책이며 묵상이라기보다는 관상에 대한 책이라고 하는 것이 더 가깝겠다. 그렇다면 묵상과 관상은 어떻게 다른 것인지 – 사실 묵상과 관상이 같은 개념과 차원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만 찾아보면 알 수 있지만, 아마도 '관상'이라는 용어자체가 한국 기독교에서는 비교적 생소한 용어이고 의도하지 않은 다른 의미를 연상시키기도 하기 때문에, 역자의 의도가 반영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토마스 머튼 (1915-1968)은 현대의 대표적 영성가로 알려진 헨리 나우웬과 필립 얀시의 삶과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던 영국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수도승이다. 칠층산 (The Seven Storey Mountain) 을 대표작으로 70여권의 작품이 현재도 널리 읽혀지고 있으며, 이 책은 그의 초기 저서 What is Contemplation? (1959) 을 약 10여년이 지난 후 다시 수정 보완한 작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1968년 그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면서 아마도 완성하지 못한 글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으로 출판하지 말 것을 부탁한 것 같으나, 어쨌든 이 책은 2003년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묵상 (명상 혹은 관상)'은 머튼이 가장 많은 글을 남긴 주제였다는 사실이 보여주듯이, 그것은 토마스 머튼을 일생동안 지속적으로 붙잡고 있었던 화두였던 것 같다.

이 책은 크게는 3부, 총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묵상을 살아있는 계시로 보는 ‘발견’이다. 2부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으로 ‘대화’라고 했으며, 3부는 영원한 안식을 얻는 삶으로 ‘동행’을 말하고 있다.


1부: 위대한 발견: 묵상, 살아있는 계시

머튼은 글을 시작하며 참된 묵상 (이하 묵상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잠깐 멈춰 ‘관상’으로 대치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이란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정의는 자기 자신에게만 생각을 제한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해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한다면 더 이해가 쉬울 것 같다. 그것은 단지 내적인 만족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는 존재의 뿌리를 찾는 과정이며 잃어버린 자신의 존엄성, 정체성을 되찾는 것이다. 이것은 결론적으로 말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만 가능하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묵상은 능동적인 것으로써, 성서 묵상과 독서, 교회의 성례와 예배의 삶으로 풍성해진다. 특히 머튼은 예배를 강조한다. 예배가 없으면 묵상의 은총을 잃게 되고, 묵상이 없으면 예배는 생명을 잃고 만다. 4장에서 다뤄진 “주입된 묵상”이란 번역이 다소 적절하지 않은 것 같은데, 간접적 묵상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입 (계시) 해 주시는 깨달음, 그 초월적인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머튼은 유사 데니스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모든 본질과 모든 지식을 초월하는 그분과의 연합을 향하여 가능한 한 무지 속에서 발돋움하라… 그 안에서 그는 지식의 모든 대상에 눈감으며, 전혀 만질 수 없고 보이지 않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제 그는 만유를 초월하시는 그분께 전적으로 속해있고 더 이상 자신이든 기타 존재든 어떤 다른 것에 속해 있지 않으며 그렇게 모든 지식의 중단으로 말미암아 전혀 알 수 없는 그분과 가장 고귀한 연합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 전적인 무지 안에서 그는 이제 이해를 초월하는 지식을 얻게 된다. (p. 85)


2부: 위대한 대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묵상은 단지 빈마음, 초연의 상태를 지나 영문도 모른 채 어둠을 더듬는 한 영혼이, 고독한 메마름과 깊은 밤의 절망을 경험한 후에야 비로서 찾아지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머튼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여진다. 그렇게 찾아진 영혼의 삶은 외적으로는 고생과 어려움과 수고가 더할지도 모르나 영혼의 내면생활은 철저히 단순해진다. 생각도 하나, 관심사도 하나, 사랑도 하나이니 곧 하나님 한 분이신 것이다. 영혼의 눈이 범사에 그분께 머무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내적, 영적인 자아가 깨어나게 되면 외적 자아가 비실체, 비본질이며 바람과 같은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한 가운데 드리는 묵상의 기도는 더불어 단순해질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을 좀 더 순수하게 사랑하는 것과, 자신을 그분의 뜻에 좀 더 내어 맡기는 것, 그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분처럼 변화되어 가기를 소망하는 것 뿐.

머튼은 우리가 자칫 묵상이라고 믿기 쉬한 유사한 것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가령 단지 조용히 격리된 시간을 갖는 것 (정적주의, quietism) 은 하나님께 대해 지금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사랑의 완성인 묵상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현실 도피와 차단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묵상은 또한 인간의 절대적 자율과 불완전한 세계를 우주의 유일한 실체로 받아들이는 실존주의적 허무주의와도 구분된다. 자기 내면의 어둠 속으로 달아나 침묵 속에 갇히고, 자의식에 빠져 현실을 기피하는 것을 종교생활로 정당화한다면, 이런 사람들에게 있어 묵상은 견딜 수 없는 고독으로 자신을 내어모는 결과만을 가져올 것이다.



3부: 위대한 동행: 영원한 안식을 얻는 삶

여기에서 말하는 “영원한 안식”이란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묵상은 정적이라기보다 늘 계속해서 움직이시는 그분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묵상을 갈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은 그분과의 동행을 갈망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번에 높이 뛰어오르는 것이 아니라 한 발 한 발 진실되고 신중하게 길을 찾아 나가는 것이다. 그 길에서는 자신의 불완전함이나 죄의식이라는 문제와도 대면할 수 있다. 묵상을 하기에 너무나 적절하지 않은 환경 – 주로 우리의 지극히 현실적인 일상들 – 도 길을 헤쳐나가는 데 있어 장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본분과 직무에 충실하는 것이 바로 묵상 생활의 정수이며, 그런 의미에서 결혼 생활도 빼놓을 수 없는 묵상생활의 장이라고 하는 것이 특히나 마음에 남는다. 결혼은 본질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신비로운 연합을 예표하기 때문에 이 신비야말로 묵상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묵상이 주는 끝없는 축복은 바로 이렇게 현실과 분리되지 않는 삶을 사는 것, 묵상을 통해 인생 본연의 실체를 더 똑똑히 보고 진정한 자유로 나아가는 것이다.

묵상가는 현재 인간이 처한 상황의 실체에 가장 열려 있고, 그 신비에 가장 골몰하고, 고난의 심연에 가장 정통하고, 가장 높은 희망에 민감한 사람입니다. (p. 216)

김혜진우리는 묵상에 대해 얼만큼 묵상 (생각) 하는가. 사실 묵상이란 거의 대부분의 모든 고등 종교에서 발견되는 자기 성찰, 내적 연합, 신과의 직관적 소통, 따라서 일종의 영적 신비적인 체험도 겪는 것이라는 정도로 묵상을 이해해 왔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참다운 묵상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도를 닦는 것 같은 (?) 침묵의 묵상이 내적 자아를 발견하되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면, 반면 그리스도인의 참된 묵상이란 내적 자아의 새로운 발견을 하나님을 아는 디딤돌로 바라보아야 한다. 어둡고 적막한 곳에서 발견한 나를 그곳에 편안히 두는 것이 아니라, 무와 어둠을 깨치고 나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깨어나는 과정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자유가 있고 빛과 승리가 있다.

묵상이라는 주제 자체가 형이상학적인 것이기에 묵상에 대한 묵상집(?) 또한 사변적이고 추상성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곰곰히 생각하며 읽어내려가게 하는 심연한 의미가 행간에 숨겨져 있다. 사실, 묵상이 이것이다 혹은 저것이다라고 정의하는 것은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과 가치를 바탕으로 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그 정의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저자가 오랜 수도사의 삶을 사는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묵상의 시간을 통해 묵상이 무엇인지, 묵상하는 삶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 정리해놓은 글은 우리를 넓고 깊은 묵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좋은 지혜서가 되리라 믿는다. 묵상에는 단지 말씀을 묵상하는 것 이상의 세계가 있음을, 묵상은 하루 중 시간을 따로 구별해내는 삶의 일부가 아닌 삶의 전부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편집: 김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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