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는다는 것
 최현실       
 KBS - Alumni      
 
 

최현실돌이켜 보면 후회되는 것들 투성이고, 아직도 사람 되기 먼 내가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부끄럽고 조심스럽지만, 내가 힘겨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누고, 나 같은 사람도 주님의 은혜를 받는 다는 것을 나누면, 읽는 분들이 용기를 얻을까 하여 글을 올린다.



<과거>

내 아버지를 기억한다. 어린 시절에 마음 속으로 아빠는 하나님과 가족 중에서 택하라면 하나님을 택하실 거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 만큼 나의 아버지는 하나님께 순종하려 애쓰셨다. 누구 보다 직장일에 열심이셨고 가정적이셨지만, 그 보다 우선은 항상 하나님이셨다. 강하고 엄격하셨지만, 가정예배 때 하나님 앞에서는 눈물지으시는 아버지를 뵐 수 있었다. 주일 뿐만 아니라 주중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하나님 일이라면 달려가시는 아버지를 떠올린다. 아버지께서 건강이 안 좋아져 중환자실에서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어려움 속에 있던 교회 상황을 염려하고 계셨다. 그러신 아버지는 믿음의 동지들과 친 형제들처럼 가깝게 지내셨고, 그 중 한 분의 따님과 나의 작은 오빠는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우리 아버지는 감사하게도, 세 자녀와 그들의 배우자들 그리고 모든 손자 손녀들 까지도, 매주 주일에 같은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축복을 얻게 되셨다.

내가 유학 시절, 다른 유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밤을 허다하게 새가며 원없이 학업에 열중하던 중, 건강에 적신호가 오고 향수병에 걸리고 말았다. 게다가 방학 때 귀국했더니 아버지의 병세가 위중해져 그만 학업을 포기하려 했었다. 그 때 유언과도 같이 아버지께서 계속 학업에 정진할 것을 강권하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고, 정현선 자매와 이지은 자매의 인도로 KBS를 만나게 되어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주님께서 부족한 나를 간사로 세워주셔서 많은 것들을 배우게 하시며 훈련시키셨고, 하나님이 나의 삶의 진정한 주인이심을 깊이 깨닫게 하셨다. 부족한 실력으로 말씀을 준비하려니, 일 주일 내내 매일 준비하고 목요일 밤새도록 씨름해도 아직도 석연치 않은게 있어서, 금요일 아침 벌써 훤히 동이 트는 것을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나 같은 사람도 써주심을 송구스러워하며, 정말 일꾼이 부족한가보다 생각되어 주님의 애타하시는 마음을 느끼기도 했다. 금, 토, 일요일을 성경공부와 교회 일로 채우게 되어, 아예 내 삶에 없는 날들로 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나 주중에 더 능률적으로 학업에 임할 수 있게 해 주셔서, 오히려 좋은 성과를 허락해 주셨고, 영육간의 강건함을 유지시켜 주셨다.

그러던 중 지금의 신랑을 만나게 되었다. 주중에는 학업으로 밤11시에 학교를 나왔고, 주말에는 하나님과 약속한 스케쥴들이 먼저 들어차 있는지라, 본의 아니게 만남의 제의에 자주 응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신랑에게 들으니 그러한 내 모습에 더 궁금해지고 만나고 싶어졌다고 했다. 한 편 내 측에서도, 그 사람이 제직회, 구역예배, 성가연습 등을, 한 번도 빠진 적 없이 성심성의껏 참여한다는 것을, 그 교회의 교인들에게 듣고 일단 마음을 놓게 되었다. 그렇다고 우리 부부가 모범적인 것만은 아니다. 서로 다른 점도 문제점도 많은 부부이지만, 같은 문제를 놓고 함께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부부의 희망이며 감사의 이유이다.

나의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그 분의 일이 먼저라는 주님 주신 믿음을 통해, 나의 삶의 방식은 단순해졌다. 학업 중엔 지도 교수가 우상이 될 수 있는데 그것으로 부터 벗어나게 되었고, 오히려 지도 교수님이 나의 신앙 생활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셨다. 귀국 후 직장 상사분들도 나의 삶의 신앙을 존중해 주고 오히려 나를 신뢰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그 대신 무슨 일을 하든 주님의 일 하듯 성실케 하도록 지켜주셨기에, 현실 삶에서의 많은 열매들을 맺게 해 주셨다.

내가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을 내려 놓았지만, 사실 나는 잃은 것이 없었다.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내게 필요없는 것들과 과도하게 집착하던 것들로 부터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셨다. 그리고 그 자리를 주님의 축복으로 채워주셨다.



<현재>

신앙생활은 과거의 회상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기에, 지금도 하나님께서 주신 또 다른 숙제를 하는 중이다. 내 삶에서 세상의 거품을 걷어내고, 나의 우상인 일과 신랑과 자녀를 내려 놓는 중이다. 이번엔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어렵다. 깨닫기 까지도 오래 걸렸는데, 과정도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며 내려 놓았다 다시 집어 올렸다를 반복한다.

그런데 연이어 얼마 전, 나의 생명 또한 주님께 내려 놓아야 함을 절감케 했던 일이 있었다. 위장장애가 오래 전 부터 있었는데, 이번에는 증상이 심상치 않아 뭔가 있겠다 싶어 수면 위내시경을 했다. 저혈압에 천식증상도 있어서인지 내시경 중 나의 호흡이 멈췄다고 한다. 여러 의료진들이 다급히 나를 깨우는 바람에 잠깐 의식을 찾았다가 다시 의식을 잃었다. 병원에서 중환자나 응급환자들을 수 없이 대하는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게는 굉장한 충격이었다. 사람의 호흡이 그렇게도 쉽게 멎을 수 있다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그렇게나 쉽게 떠날 수도 있다니, 나의 호흡을 되찾은 것은 기적이요, 주님께서 다시 주신 기회란 생각이 들었다. 검사 결과도 다행히 단순한 위염이라고 하니, 이제 사는 삶은 주님께서 맘 잡고 잘 해 보라는 덤으로 주신 삶이란 생각이 든다. 그 외에도 몸의 여기 저기 검사 결과에 이상이 있어 약을 먹어대고 있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단다. 내 생명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체험했다.

바로 어제 내 아이가 내 손을 잡고 가다가 갑자기 뿌리치고 돌발적으로 인도에서 찻길로 질주 했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서라고 지른 외마디 소리에 다른 사람들이 나를 돌아다 봤지만, 아이는 듣지도 못했는지 눈 깜짝할 새에 길을 건너가 버렸다. 다행히도 차가 오지 않았지만 난 거의 넋이 나갔다. 거기는 큰 찻길은 아니지만 다섯 개의 골목이 교묘히 교차하는 곳이라 늘 차들이 빈번히 다니는 길이었다. 오, 하나님!! 아이에게도 덤으로 삶을 더 허락하신 것이다.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었는지 아이에게 혼을 내며 설명하는데, 아이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나는 더 길고 더 엄하게 주의를 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게 주님 앞에서의 내 모습이다. 나의 영혼의 위험함을 깨닫지 못한 무지하고 무감각한 상태. 그래서 내려 놓는 것이 이리도 오래 걸리는 것 같다.

"하나님, 저의 일도, 배우자도, 자녀도, 제 생명도 모두 주님께 있음을 고백하고 내려놓고자 합니다. 아버지께서 친히 다스려 주시옵소서!!"



<나의 속 이야기>

최현실학업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직장을 다니면서, 잠은 물론이고 밥 먹을 시간도 내기 힘들 정도로 정말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다 학수고대 하던 아이를 천신만고 끝에 낳았지만, 산후 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쇠잔해져 가고 있었다. 그런 나의 삶으로 인해 내 아이, 남편, 양가 부모님들 까지도 많은 희생을 해야했다. 그 동안 내 인생을 걸고 달려 온 길을 생각하며, 주위 가족들의 희생을 감사하면서도 어쩌면 필수 불가결한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다 남편이 제발 좀 멈춰 주면 안 되겠냐고 여러 번 애원해 왔다. 매번 나는 외면하려 애썼지만, 너무도 깊게 마음이 병든 가족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소중한 가정을 병들게 하는 것은, 주님도 기뻐하지 않으실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는 수 없이 잠시라도 멈추면 영원히 도퇴되어 버릴 직장 일을 서서히 놓아 가야만 했다. 가슴이 쓰리고 슬프고 우울했다. 그러다 신랑 직장 일로 한국을 떠나게 됐고, 완전히 일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떠나고 나니까, 나의 삶이 얼마나 하늘의 뜬 구름을 잡으려는 듯 허황된 것이었는지,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얼마나 세상적인 욕심에 눈이 멀었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나의 분야에서 열심히 뛰었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나 자신의 성공, 출세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덤벼왔던 것이다. 우선 내가 세상에서 자리 잡는 것이 주님의 일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그 동안 중요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을 떠나게 하시고는,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을 돌아보게 하시고, 이 가정이 주님 보시기에 합당하도록 제 자리로 돌려 놓아 주셨다. 또한 무슨 일을 하면 더 나의 경력을 늘리고 잘 포장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내가, 이제는 주님께서 누구를 염려하시고, 무엇을 하고자 하실까를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해주셨다. 그리고 그 동안 가장 소홀히 했던 건강을 돌볼 기회를 주셨다. 너무도 감사하다. 내가 드디어 사람다운 사람의 삶을 살도록,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만을 위해 허락하신 행복의 진미를 느끼도록 인도해 주신다. 정신 없이 혼란스럽게 돌아가는 세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 나온 느낌이다. 워싱턴에서 KBS 시절에, 하루 일과를 시작하며 기도 없이는 기숙사 방을 나오기 조차도 힘들었던 것 처럼, 멀리서 누가 걸어와도 마음 속으로 기도 먼저하고 말을 건네던 그 시절 처럼, 한 순간도 난 주님 없이 한 걸음도 걸어 갈 수 없음을 절감한다. 아니, 숨 조차도 쉴 수 없음을. 그리고 내 마음의 많은 모든 것들을 모아 한 마디로 기도드린다.

"아버지, 도와주세요!"

 

편집: 김문희

* 웹진 보드로 가서 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