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죽어야 하는 자아
 정지웅       
 KBS - Alumni      
 
 

매년 가을 이 맘때가 되면, 나는 내가 처음 이 곳 워싱턴 디씨 지역에 왔던 때를 되짚어보곤 한다. 2001년 가을, 메릴랜드 주립대에서 처음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그리고 2009년 가을인 지금, 나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신학 대학원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있으며, 가르치는 선교사로서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 결혼전부터 가르치는 선교사로 살고자 소원했던 우리 부부에게는 지금 이 시기가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분별해야하는 인생의 중요한 시점임을 실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분의 삶에 대해 묵상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시고 죽으심은 진정 사람들에게 어리석은 ‘낭비’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분의 능력 낭비, 시간 낭비,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사건일 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내게 학교를 세우고, 가르치는 꿈을 마음에 품게 하신 지로부터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어느 날, 선교사로서 나갈 사역지를 알아보며, 내 스스로 주어진 조건, 과거의 경험과 경력과 지식을 가지고, 나만의 ‘최적’을 찾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이러한 학위가 있고, 이런 경력이 있으니 이런 곳을 알아봐야하겠다. 이런 일 정도는 해야하겠다.’ 물론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며, 필요한 절차임은 분명할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갈라디아서 3:1 말씀이 내 마음을 쳤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Before your very eyes Jesus Christ was clearly portrayed as crucified).

마치 내 눈앞에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는 듯 했다. 그리고 그 분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어느 순간 내 삶의 중심의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내 사역, 내 비전이 놓여있었다. 그 분이 세상을 이기신 사랑과 겸손의 방법이 아닌, 내 자아의 방법이 나를 사로 잡고 있었다. 내가 도대체 무엇이라고 내 명분, 내 명예를 내세우는가 싶어 비통한 마음으로 울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모습에 이전처럼 소스라치듯 놀라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내 안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잠시 잠깐 주님으로부터 시선을 떼고 있으면, 요나처럼 빠른 걸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서, 내 자아의 방법대로 살고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내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고, 죽고 다시 사는 것만이 살 길임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나를 이렇게 대할 수있어?’하고 화가 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나 정도면 이런 일 정도는 해줘야지.’하고 으쓱하기도 한다. 그러면, 또 다시 그 생각을 주님 앞에 가져다 놓고, ‘주님, 아직 내 자아가 많이 살아있습니다.’라고 고백하며 다시 못박는다. 해결되지 못한 힘든 일과 인간관계, 내 죄의 모습을 가지고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을 때, 십자가를 통과하며 죽고 다시 사는 것은 그 힘든 일, 나를 힘들게 했던 상대방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했느냐 아니냐가 아닌, 내 모든 생각과 관점, 생활 방식이 철저히 모두 십자가 앞으로 가져가 져야하고, 고통 가운데 밝히 드러나야하고, 새로워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니라. (갈 6:14~15)

매일 새로운 피조물로서 산다는 것. 그것은 율법과 의무로 매여있는 삶이 아닌,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좇는 삶, 진정 자유한 삶일 것이다. 종의 멍에를 메고 사는 삶이 아닌, 유업을 이을 자로서 아들의 명분을 누리고 사는 삶일 것이다. 무엇보다 그것은 우리의 힘이나 의지가 아닌, 성령님의 인도하심아래 매일매일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는 삶일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 5:1)

정지웅

 

편집: 김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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