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때 얻고: 취업하는 과정에서의 내려놓음
 김건우       
 KBS -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8      
 
 

김건우“버릴 때 얻고”라는 주제를 받고서 내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 “버리고” 또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 “얻었는지”에 대해서 한참 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나는 단 한번도 스스로 버린적이 없었다는 것을. 다만, 버리지 못하고 손에 쥐고있다가, 상황이 허락치 않자 결국에 버릴수 밖에 없었던 적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또한, 그렇게 쥐고 버리고 과정에 나에게는 어떠한 패턴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스스로의 힘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아둥바둥하다가 기진맥진하게되고, 결국엔 다시 하나님을 찾게되고, 그제서야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나아가고, 그 모든 과정에서 날 항상 지켜보셨던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찾게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덧 30살이 넘은 나이가 되었다. 믿음의 선배님들 앞에서 이런 글을 쓰는게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그래도 30여년을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다양한 경험들을 한 것 같다. 1991년에 미국으로 유학와서 고등학교를 진학했고, 졸업 후 대학에 진학했다. 1998년에 한국으로 귀국해 군 복무를 마쳤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학부를 마쳤으며, 그 후 4년동안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2007년, 다시 미국으로 유학을 와 지금은 학업 중이다. 내년에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모색하고 있다. 돌이켜보건데 이 모든 선택의 과정들 중에서 단 한번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지시 않으셨던 적은 없다. 그 중 오늘은 특별히 한국에서 입사 후, 이직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내가 체험한 하나님을 나누고 싶다.

누구나 한 번쯤은 원하는 학교, 인턴, 혹은 직장에 원서를 넣어두고 가슴 졸이며 결과를 기다리던 기억이 한 번 정도는 있을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웃으며 넘어갈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기다림의 시간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던지. 당시 나는 입사한지 2개월 정도되는 사회 초년생이었으며 본래 관심이 있었던 업계로의 전향을 위해 이직 준비 중이었다. 결국 옮기고 싶던 회사에 원서를 넣었고 일이 잘 풀려서 최종 면접까지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면접 후 면접관은 “상의 후 조만간 연락 드리겠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했고, “조만간”이라는 시간이 어느 정도의 기간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나는 하루하루를 마음 졸이며 결과를 기다렸었다.

한 주가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자 저는 점점 패닉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핸드폰을 손에서 멀리하지 못하게 되었고, 혹시나 핸드폰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가 싶어 다른 전화로 간간히 내 핸드폰에 전화도 해봤다. 물론 핸드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혹시 근무 중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몰래 복도로 나가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두 손으로 공손히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매번 보험 또는 대출 광고 등의 Spam 전화들 뿐이었다. 그렇게 또 한 주가 지나면서 개인 이메일을 통해 결과 발표를 확인하는 횟수도 갈수록 늘어갔습니다. 특히 회사에서 상사들의 눈을 피해 개인 이메일 계정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집어 넣을 때는 어찌나 긴장되고 식은 땀이 흐르던지. 기다림이 너무나도 힘들고 지쳐서 먼저 채용 담당자에게 연락을 해볼까 하면서도, 그런 제 모습이 혹시나 조급하게 비추어져서 평가에 부정적으로 작용될까봐 먼저 적극적으로 결과 통보 방식에 대해 문의할 수도 없었다. 다만 기다릴 수 밖에 없었던 간절하고 조급한 기다림의 순간들이었다.

그렇게 또 한 주가 지나가자 나는 간절함에 메말라가게 되었습니다. 머리와 입술로는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라”라는 복음 성가가 24시간, 7일동안 불러지고 있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연락이 올 확률은 높아진다는 간단한 공식은 삶에 절대 진리가 되어 핸드폰은 항상 내 주머니 안에 두었다. 심지어 샤워할 때는 핸드폰을 수건에 감싸서 세면대 위에 두는 센스까지 발휘하며 핸드폰을 항상 팔이 미치는 범위 안에 두었다. 또한 개인 이메일 계정은 밤낮 가릴 것 없이 매 10분 간격으로 확인하였다.

그렇게 온 정신이 이직에 팔려있던 나는 결국 당시 내가 몸을 담고 있었던 회사에서의 맡은 일을 망치게 되었고, 상사로부터 요즘 정신을 어디에 두고 다니냐는 꾸지람을 듣게 되었다. 입사 이후로 처음 들은 꾸지람이었다. 비로소 그 날 점심시간 회사 뒤에 위치한 산에 올라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일찌기 내 머리가 남들보다 썩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남들보다 내세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실함과 진실함이었다. 내가 처한 곳에서 성실하고 진실되게 맡은바 직분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항상 최선의 것을 주시곤 하셨다. 이 것을 삶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에 나는 항상 성실하고 진실되게 맡은바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바로 눈앞의 욕심에 눈이 멀어서 성실함과 진실함은 커녕, 나는 맡은바 직분을 등안시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의 그런 모습을 깨닫게 하시자 얼마나 부끄럽고 죄송스러웠던지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그 기도는 지난 3-4주에 걸쳐 내가 하나님께 드렸던, 희망사항을 정해놓고 욕심에 사로잡힌 기도와는 다른 기도였다. 채용결과가 어떻게 되던 간에 하나님께서 가장 최선의 것을 주실 것임을 믿겠다는, 그 결과에 순종하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진심어린 내려놓음의 기도였다.

김건우3개월 뒤 나는 이직에 실패한 회사보다 마음 속으로 더 흠모하던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께 약속드렸던 것처럼 이직전의 기간동안은내가 몸담고 있던 회사에서 최선을 다해 성실히 임했다. 그리고 두번째 이직의 시도 과정에서는 처음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동행하신다는 것을 알기에 담대함으로 임할 수 있었다. 나는 감사함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을 다해 두번째 직장에서도 근무를 할 수 있었고, 다시 유학을 오기 전까지 4년이라는 기간동안 직장에 대한 불만을 가져보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었다.

내 욕심을 버릴 때 결국에는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좀 더 나아가 우리가 힘들고 고달픈 와중에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나아가야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지금도 위에 이야기한 때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눈 앞의 욕심에 눈이 멀어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로부터 멀어져서, 나답지 못한 행동들을 한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물론 그런 미숙한 모습조차 나를 성장케했음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저는 많은이들이 불확실한 인생의 순간들 앞에서, 나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아둥바둥대는 안타까운 시간들을 보내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을 신뢰하여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그 시간들을 의미있고 긍정적인 시간들로 사용함으로 은혜를 얻으시기를 바란다.

쉽지 않은 일인 줄 안다. 사실 나도 이 경험 이후로도 대학원에 지원하는 과정에서, 그 후에 인턴을 찾는 과정에서, 그리고 현재 직장을 찾고있는 과정에서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온전히 맡기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내게는 반복되는 패턴이 있는 것 같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보겠다고 노력하고 실패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고, 없는 중에 감사하게 하시고, 내려놓게 하시고, 결국에는 또 다른 길로 인도해주신다. 이 패턴 가운데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배우며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저는 시련이 닥쳤을 때, 어제보다 오늘 더 주님을 신뢰하고, 어제보다 오늘 더 주님께 제 모든 것을 맡기고 내려놓게 되었다. 또한 주님께서 열어주실 길에 대한 기대감마저 생기게 되었다. 아직 터무니없이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날히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바라는 것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한치의 의심없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처한 상황에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는 모습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편집: 구일모, 김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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