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을 통해 겪는 나 버리기
 권태성       
 KBS - Alumni      
 
 

권태성감정의 기복이 많았던 대학 시절, 나는 성숙한 서른살의 그리스도인을 마음으로 그려보곤 했습니다. 서른 즈음이면 그토록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사도 요한을 닮은 사랑의 사람, 모든 이에게 피함직한 그늘을 마련해주는 풍성한 나무와 같은 온유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기대속에 흡족해하곤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물론 지금도 한참 어리다고 생각하지만) “어른스럽다,” “성숙해보인다,” “따듯하고 정이 많다”는 등의 이야기를 자주 듣고 자라서 나는 나의 모습이 그러한 줄 알고 자랐습니다. 가끔씩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생기거나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면 며칠씩 그 생각 때문에 끙끙 앓을 정도였습니다. ‘나’라는 사람은 절대 그런 행동이나 말을 할 사람이 아니니까요. 나는 나름대로 온유하고 선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 영광에 이르지 못한 모든 사람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나은 사람에 속할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나의 내면은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요.

나의 참 모습을 직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나는 서른이 넘어서야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느즈막한 군입대를 통해서 그동안 마음 한 구석에 숨어 있었던 차갑고 메마른 부분들을 조금씩 그러나 명확하게 보게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숨길 수 없는 좁은 생활 공간 안에서 내가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고상한(?)’ 인격들이 하나, 둘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들이 어찌나 고통스럽던지 기도할 힘마저 잃고 그냥 바닥에 주저 앉아버릴 때가 많았습니다. 날카로운 말투와 차가운 시선이 어디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오는지 스스로를 놀라게 했습니다.

“내가 왜 당신에게 항상 방긋 웃고 친절하게 대해야 하죠? 당신이 내 아내인가요? 자식인가요? 가족이라도 되나요? 친구인가요?”

“희생과 봉사? 당신은 나한테 뭘 해주길래 희생과 봉사를 요구하는거죠? 나는 내가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예요. 당신이 비염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는지는 모르지만 그것 때문에 내가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약을 지어줘야 하나요?”

“이것 밖에 못하겠어? 나는 네가 후임병이라고 해서 네 인생에 관여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 너의 미래에 대해 관심도 없고, 네가 앞으로 어떻게 살든 상관할 기력도 없단 말이야. 그래도 최소한 할 일은 해야 할 거 아니야. 나는 너에게 미안해 할 필요가 없어.”

‘전도를 하긴 해야하는데... 아, 전도를 하면 내 시간을 다 뺏기게 되겠지. 시도 때도 없이 나에게 희생을 요구하겠지. 한도 끝도 없이 이것 저것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달라고...’

아직 산후 조리를 하고 있는 아내와 생후 10일이 된 아기를 뒤로 하고 입대할 때, 나는 분명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기에 이런 상황 속에 군대를 오게 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혹시 나를 통해서 군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는 그런 대단한 일을 위해서 부르신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의욕적으로 군 교회에서 찬양팀도 하고 QT 모임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모든 것들이 시들해졌습니다. 물론 군에서는 모든 일들이 제한을 받기 때문에 그런 것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내 안에 그 모든 일들을 지탱할 힘이 없었습니다. 내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는 ‘조금이라도 편하게 지낼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고생도 그냥 눈감아 버리는 이기심,’ ‘내가 다른 병사들보다 나이가 많기에 꼭 대우를 받아야겠다는 생각,’ ‘가족과의 단절된 생활에서 오는 불만과 외로움...’ 이런 것들이 어느새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복음을 전하기에는 한 없이 부끄러운 모습으로 불신자들 가운데 하루 하루를 살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아름답지 못한 모습의 그리스도인으로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계신가요? 내가 복음을 전할 때, 나의 ‘사랑 없음’에 사람들이 돌아서서 비웃을까봐 두려워하는 삶, 그것은 끝도 없는 고문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대변인이라도 된 것처럼 살아왔던 나에게 그러한 삶은 정체성을 잃고 깊은 어두움 가운데 살아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냥 친절하게 행동하면 되고 따뜻한 말을 하면 되는데, 그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어디서 그런 날카로운 말들이 튀어나오는지, 그 말들을 하는 그 순간부터 이미 나의 마음은 괴로움으로 가득찼습니다.

입대 전에 가족 같이 가깝게 지내던 집사님 한 분이 짜장면 한 그릇을 사주시며 군생활 내내 나의 마음을 떠나지 않았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태성 형제, 나는 하나님께서 태성 형제의 부족한 부분을 온전케 해주시기 위해서 군에 보내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퍼즐의 마지막 부분을 채워 넣듯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한 조각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계시다고 믿어요. 하나님께서 이미 보고 계실거예요. 태성 형제가 멋지게 군에서 제대하는 모습. 더 온유한 사람이 되어 있는 모습을...”

국방부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고 하던가요? 어느덧 시간이 흘러서 이제 두달 정도만 지나면 전역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2년 전에 보고 계셨을 그 멋진 모습은 어디에 있는지, 그 온유함은 어디에 있는지. 내 안에서 그런 모습을 쉽게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밤이면 상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마음을 토해냅니다. 이제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냐고, 이 모습 이대로 나갈 수는 없지 않냐고, 답답한 마음에 하나님께 같은 말만 되풀이 합니다. 아직도 무릎을 꿇으면 내 안에 있는 메마르고 어두운 부분들이 하나님 앞에 놓여져 견딜 수 없이 괴로울 때가 많은데, 이 고통의 끝은 어디인지 하나님께 여쭤보곤 합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TV를 보는데, 어느 코미디언이 남편과 함께 토크쇼에 출연해서 힘겨웠던 지난 시절의 이야기합니다. 어느 PD로부터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온 ‘골룸’ 분장을 하고 TV 프로그램에 출연해달라는 제의를 받았는데, 분장을 하면서 그 모습이 어찌나 기괴하던지 거울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급기야 분장을 하는 도중에 화장실에 가서 울었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하는 자괴감에 너무 힘들었던 것이지요.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회자가 그녀의 남편에게 한번 ‘남편 골룸’을 보여줄 수 있겠냐고 즉석에서 부탁합니다. 아내가 먼저 시범을 보이며 이렇게 행동을 하고, 표정을 짓고, 또 이런 소리를 내면 된다고 말합니다. 당황하는 기색이 영력한 남편이 일어나 따라해보려 하는데, 영 신통치 않습니다. 그 때 코미디언인 아내가 우물주물 하고 있는 남편에게 말합니다.

“자신을 버려야해.”

온전한 퍼즐 한 조각. 그 예수님 닮은 온유함은 아직 ‘나’라는 사람에게 멀리 있는 듯 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보낸 2년이라는 시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보내야 조금이라도 비슷해질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낙망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주 실망하고 괴로워하지만 절망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왜냐하면 이 짧고도 긴 군생활 동안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사실을 내 마음에 새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내면에서 ‘나’를 버릴 때에만 내가 그토록 갈망하는 온전함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를 버릴 때에만, 내가 죽을 때에만 예수님으로 내 안에 사시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내 안에 사신다면 나는 희생하는 척, 봉사하는 척, 온유한 척, 사랑하는 척... 그렇게 척하는 껍데기 뿐인 삶을 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 계셔서 그분의 일을 하셨듯이,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셔서 당신의 일을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최고의 작은 예수’가 되기 위해, 나 자신을 버리는 혼신의 연기를 펼칠 수 있을 때까지, 나를 십자가의 못 박는 노력을 계속하면 되겠습니다. 지름길이 없는,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민망하고, 부끄럽고, 고생스러울 것이라고 말씀하신 그 좁은길로, 하나님을 직접 뵈올 때까지 걸어가야겠습니다. 이 깨달음이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느즈막하게 군대로 인도하신 이유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내일 one-to-one 때문에 한 형제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몇 주 전부터 함께 이야기를 나눠온 형제입니다. 내일을 생각하면 고민부터 됩니다. 예수님을 닮지 않는 내가 어떻게 그에게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지, 그분이 하신 일에 대해 삶의 증거 없이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 고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나를 본받으라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일의 만남에 대해 기대보다 걱정부터 앞섭니다. 약속을 해놓았으니 만나지 않을 수도 없고...

그 형제에게 내가 가장 자신 있게 나눌 수 있는 것만 전해야겠습니다. 다른 것은 영 자신이 없습니다.

비록 내가 예수님처럼 사랑이 많거나
남을 따듯하게 감싸줄 수 있는 온유함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토록 사랑이 없는 나를 만나주신 가장 큰 사랑이신 예수님,
그토록 허물이 많은 나를 만나주신 가장 큰 용서이신 예수님,
그래서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예수님,
나의 사랑이신 그 예수님을 전하면 되겠습니다.

 

편집: 구일모, 김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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