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죽는 희생과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길
 신자은       
 sKBS - KDI School      
 
 

신자은지난 8월18일, 대한민국 정치사에 영원히 기억될 한 인물,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셨다. 대규모의 장례위원회가 구성되고, 현직에서 서거한 박정희 대통령이래 처음으로 국장으로 장례가 치루어졌다. 전국의 분향소에는 조문행렬이 밤늦도록 이어졌고, 방송과 신문은 고 김 전 대통령의 족적과 업적을 기리는 다큐멘터리를 연일 내보냈다.

70년대 초반에 서울에서 태어나, 80년대를 미성년자로 보내고, 대학에 들어가니 이미 문민정부가 들어서서, 민주화 시대의 치열함을 직접 몸으로 경험하지 못한 세대이면서, 특히나 정치에는 무식하달 수 있는 나에게 고 김대중 대통령이 어떤 존재감을 갖는 정치지도자 였는지, 그가 남긴 업적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서거이후 쏟아져 나온 그에 대한 자료와 지인들의 기억들을 접하며 나는 그가 누구인지를 어렴풋이나마 배웠다고 해야 솔직하다. 어린 자녀를 대동하고 눈물을 쏟으며 대통령의 영전앞에 분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품을 수 있는 존경과 경의의 깊이를 보았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무엇이 이토록 강하고 애절하게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이러한 의문의 답을, 유서대신 공개된 김대중 대통령의 일기에서 감지했다. 1월 15일의 일기를 옮겨본다. ‘나는 일생을 예수님의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교훈을 받들고 살아왔다. 수많은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길을 갈 것이다.’

그가 납치, 사형언도, 투옥, 연금, 감시, 도청, 정치적 보복등 온갖 풍상을 겪은 것이,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보여주는 정치적 쇼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 민주주의와 남북화해를 위한 그의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희생임을 국민들은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도 한 인간이었기에, 그의 말, 그의 인격, 그의 성품의 불완전함이 분명 존재했겠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을 회상하지 않는다. 고통받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위해 얼마만큼 인생을 부었느냐를 고민했던 그의 신념에 오직 경의를 표할 뿐이다. 그리고, 국민에게 진정한 사랑과 헌신을 바치고, 민족의 미래에 대한 방향성과 추구해야 할 가치를 제시해주는 그러한 정치 지도자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안타까움만을 가슴에 품고 만다.

민주주의와 인권, 약자와 평화를 위해 일생을 바쳤다고 하나, 그는 살아 남아 권좌에 앉았고,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며, 전 국민의 애도가운데 명예로운 죽음과 숭고한 장례를 맞이했다.

그가 추구했던 가치, 그가 치렀던 희생, 약자에 대한 그의 진정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그것과 비교될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능케 하려고 했던 가치는 민주주의나 남북 화해와는 비교도 될 수 없는 것이다. 그가 치렀던 희생, 神이면서 인간이 되어 자신의 모든 능력과 권세와 영광을 스스로 포기하고, 무고한 비난과 멸시, 고초와 오해 이후 마침내 가장 치욕스러운 형태의 죽음을 맞이하였으나 어느 누구도 해하거나 저주하거나 원망치 않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의 진정성을 세상의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의 장례는 초라했고 그가 3년동안 가르치고 섬겼던 제자들은 모두 그를 버렸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바치는 숭엄한 조사도, 그의 신념과 업적을 기리는 추도사도, 분향의 행렬도 조화의 병풍도 없었다. 화려한 장지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가 예수님의 시대에 살지 못한 탓에 예수님께서 마땅히 받으실 만한 장례를 해드리지 못했다고 치자. 당대의 사람들은 미처 예수 그리스도의 귀함을 깨닫지 못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하신 일들과, 그를 통해서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와 샬롬의 구원에 대하여 명명 백백히 성경이 우리에게 계시해주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얼마만큼의 눈물로 그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가 우리에게 맡긴 사명에 붙들리고, 그를 사모하고, 그에게 존경과 경의를 바치고 있는 것인가.

대신 죽지 않은 자의 부분적 희생에도 우리는 마음과 눈물을 쏟는다. 대신 죽은 자의 완전한 희생에 왜 우리는 무덤덤한 것인가. 세상에서 인정과 명예를 누린 사람에게도 우리는 더 그의 뜻을 기리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그저 주기만 하고 떠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우리는 얼마나 통회하는 마음을 갖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값싼 복음’으로 만든 것은 바로 내가 아닌가 두려운 마음으로 돌아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이루신 義, 그 義를 덧입은 자에게 가능케 하신 권능과 사명을, 이력서 종교란에 부끄러운 마음으로 적어놓는 기.독.교. 세 글자로 둔갑시켜 놓은 것은 아닌지. 우리, 그리스도인이야 말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셨으나 아직 완전히 도래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일에 완전한 순종과 충성을 바치고, 그의 뜻을 받들어, 그가 갔던 길을 가고 그가 행한 일을 행하며, 그의 가르침을 전하는 일에 인생이 부어져야 할 것인데. 나는 오늘 하루를 무엇을 위하여 어떤 가치를 이루려고 애쓰며 살았는가.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는 김 전 대통령의 고백을 대하며 그저 허탄한 가슴을 쓸어내린다.

육신의 삶을 다하고, 하나님 앞에 서서 그 분의 얼굴을 대할 그 날을 맞이할 때, 나는 주님앞에 나의 살아온 길, 오늘의 이 하루에 대하여 어떤 고백을 내어놓을 수 있을까. 미흡하기 그지없느나, 주님과 동행하면 그 분의 은혜로운 인도를 따라서 복음의 달음질을 후회없이 달린 아름답고 복된 인생이었음을 감사하고 그 분께 영광와 찬양을 올려드릴 준비를 나는 얼만큼 치열하게 하고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나의 사랑이, 뜨뜻한 온정이 아니라 나를 사로잡는 열정으로 불타오르기를 기도한다.

 

편집: 김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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