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이용규 교수의 "더 내려놓음"
 
 

프롤로그 (정리 윤지은)
1부 자기애 내려놓기 (정리 윤지은)

2부 자기의 내려놓기 (정리 장안리, 김문희)
3부 더 더 내려놓기 (정리 김근배)
에필로그 (정리 김근배)


프롤로그윤지은

하버드 출신자의 몽골행 이야기는 내가 말하고자 했던 알맹이라기 보다 껍질에 불과하다. 즉, 그것은 내용을 담기 위한 그릇이지 그 속에 담긴 보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은 선교사로 부름을 받아 가더라도 선교사 안에 쥐고 있는 것들이 있을 수 있다. 선교사가 되기 위해 이미 많은 것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더 집착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사역 자체와 사역의 열매에 집착하는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사역이 나의 자존감을 확고하게 해주고 내 자아를 살려주는 것처럼 그것을 꼭 붙들 때가 있다. 결국 뭔가 내려놓는 대신 다른 것을 잡은 것이다. (7-8)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8)

그러나 <내려놓음>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었다. 하나의 성경구절로 요약하자면 바로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의 정신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 자아가 죽는 것, 바로 이것이 내려놓움이다. (8)

독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나는 <내려놓음>에서 다룬 내용들이 성화의 단계의 삶을 묘사하는 것처럼 오해를 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내려놓음이란 어떤 성공한 위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백해야 할 삶의 이야기이다. (p. 9)

 

아버지를 누리는 삶으로의 초대

이 비유에는 두 명의 아들이 나오는데 이 두 아들 모두 아버지를 잃어버렸다. 비유에 등장하는 두 아들은 모두 탕자였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두 아들의 모습이 공존한다… 자기애와 자기의를 버린다는 것을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표현으로 정리해 보면 나의 ‘자아 내려놓기’ 내지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기’라고 할 수 있다. (14-15)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더 사랑하고 더 깊이 만날 수 있는가는 자신의 자아 문제를 성찰하는 깊이와 맞물려 있다. 자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여전히 아버지 근처에 있지만 아버지를 누리지 못하는 상태의 삶을 지속하게 되기 때문이다. (15)

 

 

1부. 자기애 내려놓기

우리의 삶 가운데 이것만은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막는 영역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발치에까지 가지고 나갔지만 깨뜨리지 못한 채 여전히 틀어쥐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안에 혹시 하나님조차 들어갈 수 없는 영역이 있는가? 이 영역 안으로 주님을 초청하라. 주님이 내 의식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셔서 나의 주관자가 되어주셔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말로는 순종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정작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28) 하나님께 먼저 통보하는 식이다. 그러고 나서 여러 가지 요구 조건을 내건다. (30) 결국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좋은 일을 계획했으니 도와주셔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최선이 무엇인지는 돌아볼 겨를이 없다. 일을 벌여놓고 하나님께서 뒷수습해달라는 것이 우리가 하는 기도의 주요 내용이다. (30)

우리의 기도에는 … 우리가 정하고 바라는 기도 목록이 가득 차 있다. 그런 기도 목록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들어갈 여지가 없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인데 그대로 다 되게 해 주십시오’ 라는 요구와 하등의 차이가 없을 때가 많다. 그러나 응답 받는 기도를 원하고 하나님과 대화하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기도부터 바꿔야 한다. (29) 기도의 핵심은 순종하려는 마음이다. 얼마나 기꺼이 순종하는가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루어가는 기초가 된다. (31)

하나님께 내 인생을 맡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내 삶의 결정권자로 모시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가 맡기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하나님을 오해하기 때문이다.(31) 사탄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켜서 하나님은 우리가 싫어하는 것을 강요하시는 내지 엄격한 분, 잘못을 지적하시는 분으로 여기게 만든다. (31)

“하나님 여긴 제 영역이에요. 안 도와주셔도 됩니다. 방해만 하지 마세요. 나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어요.” (32) “하나님, 이건 하나님과 타협이 안돼요. 나는 내 길을 가렵니다.” (32) 우리가 어떤 영역에서는 하나님께 내려놓지 않고 움켜쥐는 것이 있다. (32)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붙잡혀 있다. 특별히 우리를 가장 집요하게 묶고 있는 것이 바로 자신에 대한 애착이다. (33)

 

2장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죄가 되나요

이 시대는 끈임없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라고 말한다. (34) 대중매체는 끊임없이 “나, 나, 나”을 외친다. 내가 만족하고, 내가 튀고, 내가 드러나는 것, 내 주장을 관철시키고, 자신을 극대화하는 것, 이것이 성공이라고 강조한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 시내는 ‘나’를 숭배하고 ‘나’를 우상화하는 일에 몰두하게 만들고 있다. (34) 인터넷 미니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자기숭배의 은밀한 현장을 볼 수 있다. (34) 계속해서 그 사이트가 주는 메세지는 “나는 중요한 사람이며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나를 인정해 주시고 나에게 관심을 보여주세요” 라는 것이다. (35)

교회에 다니지만 교회 신앙생활의 목표가 ‘자아실현’이 되는 경우를 흔히 목격하게 된다.(35) 많은 신자들이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신들의 생활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교회를 다니는 목적도 세상에서의 성공인 경우가 많다. 만약 이것을 위한 노력이 좌절되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하나님을 향해 분노를 쏟아놓는다. (35)

근간에 영향력을 미치는 뉴에이지 운동이 추구하는 것은 우주에 산재한 힘을 빌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다. 몽골의 샤머니즘이나 라마 불교가 추구하는 것도 결국 우주에 존재하는 신의 힘을 빌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데 있다. 비록 추구하는 것이 거룩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 자기실현의 노력이 핵심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이용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를 원한다면 다른 종교나 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35)

우리는 신앙생활 가운데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을 필요가 있다. 혹시 자신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진정한 성공을 이룰 수 있는 열쇠를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사랑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이다. 아버지의 사랑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면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돼지우리에서 배를 움켜쥐게 된 탕자 비유의 둘째 아들과 하등 다를 바 없다. (35-36)

어느새 하나님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원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내 안에 전 소장과 비교하여 인정받고 싶어 하고, 연구원들에게 전 소장 못지 않다는 인상을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내 안에 교인이나 연구원들에게 착한 사람으로 인식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37)

가장 궁극적인 문제는 영적 전쟁에 대한 무지였다 (38)

나중에 예배가 어떤의미인지 깨닫고 나서, 나는 그때 하나님 앞에 목숩을 내놓는 마음으로 예배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 것,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앞섰던 것이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고백했다.(38)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내면의 상처와 마음의 왜곡을 볼 수 있게 되었다.(41)

아내는 복음을 새롭게 접하면서 변화를 받았다. 영혼이 소생되고, 우울증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육체의 질병도 호전되었다. 아내는 우울증이 자신의 죄성에서 기원하는 것임을 알았다. 우울증의 배후에는 극도의 자기애가 숨어 있음을, 자기가 상처받았다고 느끼고 그 상처를 핥고, 또 핥으며 자기연민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안 것이다. (42)

내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내 것을 포기하고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주님이 주인 되시는 삶이다. 내 것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으로 채워진다는 말은 내가 주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으면 주께서 내 안에서 다시 사신다는 진리를 좀 더 쉬운 표현으로 설명한 것일 따름이다. (43)

아내는 후에 당시 자신의 모습을 ‘착한 크리스천 콤플렉스’라는 용어로 정리했다.(44) 단순히 착하고 좋은 교인이 되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대면하여 만날 수 없었다. 아내에게 하나님은 남편의 하나님이었지 자신의 하나님이 아니었다. (44-45) 아내는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자신의 구원에 관한 한 자신이 반드시 십자를 통과해야 하나는 사실을 가슴으로 경험하지 못했다. (45)

죄를 지으면 인간은 영적인 죽음에 놓이게 된다. (46) 문제는 예수님이 진 십자가, 여기서 멈춰버리기 때문에 십자가의 의미를 반감시켜 버린다는 것이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비로소 십자가가 나에게 의미를 갖는 다는 것을 강조하지 못한 것이다. (46)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삶에 변화가 없고, 교회는 다니지만 능력이 없고, 영향력이 주변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46) 세례의 진정하고 온전한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내 자아가 죽는 것이다. 세례가 이를 상징한다. 내 자아가 죽어서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자아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예수님이 주인 되는 자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세례를 받았지만 여전히 두 손에 모든 것을 움켜쥐고 있는 경우가많다. 여전히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47)

아내는 자신이 우울증에 빠지고 힘들어 한 근본 원인이 자기자아가 온전히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47) 상처입었다고 벌떡 일어나 아파하는 것도 자아가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47)

우리가 부활로 넘어가기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관건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일이다. 문제는 우리 힘으로는 그것을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선물이 바로 성령님이다. (48)

 

3장 나보다 앞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런데 기도하던 중 주님을 따르는 과정에는 원하지 않거나 또는 익숙하지 않은 길을 가야 할 때도 있음을 묵상하게 되었다. (50)

이 일들을 지켜보면서 내 열심과 경험만으로 고집을 부려서는 안 되며, 하나님께 온전히 의탁하여 자신을 낮추어야 할 때가 있음을 보았다. (51) 자신에게 익숙한 것, 자신이 기대하는 것으로 사역하다보면 사람의 일만 보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경험과 지식과 기대를 버리고 하나님을 구하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본다. (51) 나의 약함 가운데 일하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바라고 나아가면 전혀 새로운 것을 보고 누리게 된다.(51)

2006년 6월 나는 나 자신이 신뢰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된 경험을 했다. (51)

내가 의지하던 것을 다 내려놓은 그 다음부터 하나님이 일하시겠다는 말씀이었다. 돌아보니 나는 이 여행을 시작하면서 운전기사 남해를 줄곧 의지해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이 여행의 가이드가 되기위해 내가 가장 의지하는 대상을 제거하기로 계획하신 것이다.(54)

달리는 차에서 우리는 다함께 기도했다. 문득 하나님께서 “이제 내가 일하기 시작하겠다”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다시 생각났다. ‘아, 하나님께서 계획이 있으시구나’라는 깨달음이 왔다.(60)

우리가 차 사고로 약간 지체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들에게 인도되도록 타이밍을 조율하고 계셨다고 생각하니 내 안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또 마음에 기쁨이 몰려왔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61)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양울기 시에서 만난 이 운전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놓으신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61)

돌이켜보건대 우리의 모든 일정의 1분 1초까지도 하나님의 섬세한 계획 가운데 붙들려 있었던 것이다. (64)

나는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하나님의 계획은 너무나 정교하고 정확하시다는 것 또한 보게 되었다. 내가 계획 할 수 없고 바라볼 수도 없던 영역 가운데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목도했다. 그래서 우리의 실패도, 우리의 고난도, 우리의 약함도 하나님 앞에 드려질때, 그리고 “하나님, 말씀하십시오. 종이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기 시작 하시는 것을 보았다. (64)

도리어 내가 신뢰한 운전기사가 그의 차와 함께 남게 된 순간부터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타이밍에 하나님의 방식대로 일이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다.(66)

우리의 인생길도 이와 같다. 몽골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한국의 크리스천들의 삶 가운데 동일하게 일하시지 않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66)

그러나 우리는 예측 가능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예측 가능한 일들만 추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우리가 기회를 드리기 보다는 우리의 계획과 경험과 고집으로 우리의 삶을 채워간다. 하나님이 들어오실 자리를 만들어 드리지 않은 채…. 결국 자신이 신뢰하는 것에 자신이 묶인채 살아가는 것이다. (66)

당신이 지금 신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 이것만은 건드리지 마세요’ 하고 막고 있거나 하나님까지 거부해온 자신의 은밀한 공간이 있다면 이 시간 그것을 하나님꼐 열어 보여라. (67)

 

4장 오직 아버지의 사랑으로 만족한다

인간 아버지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갖는 공통점은 자녀 된 우리가 그 사랑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71)

우리는 어른이 될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아버지의 사랑을 다른 주변적인 데서 대체하고자 한다. 문제는 그런 삶에 진정한 안식과 평안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어린아이일 뿐이다. (72)

우리의 내면에는 사랑을 필요로 하는 어린아이가 있다. 이 어린아이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만 만족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내면의 어린아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많은 것을 추구한다. 이성간의 사랑, 주변의 인정, 성공의 기쁨, 재물이 주는 풍요로움과 안정감 등. 그러나 그 결과는 언제나 실망과 허탈뿐이다. (72)

나는 교회 공동체에 있는 영혼들 가운데에도 ‘아버지’라는 단어에 힘겹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73)

연예계로 나오기 전, 특히 끼 많던 청소년 시절에 그들이 경험한 어른들의 무시와 거절, 외면, 무관심, 언어폭력에 대한 상처가 느껴졌다. 또한 그 상처가 그들의 성취욕과 인정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과 관계있음을 직감했다. (74)

그들이 자아내는 웃음이 실은 외부의 괌심을 이끌어내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수단이자 자신을 방어하는 방어벽이며 현실의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탈출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74)

아버지와의 관계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준비가 되지 않은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75)

선배는 이 문제를 안고 하나님께 나아갔다. 통곡이 뒤를 이었고 결국 그는 떼굴떼굴 구르며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75)

아내와 나도 과거에 겪은 관계의 상처나 죄의 문제가 결혼생활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별히 가정 내에 누적된 왜곡은 자연스럽게 부부관계에 나타났다. (76)

아내는 후에 용기를 내어 장인어른께 그 이야기를 했다. 문제를 해결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76-77)

나 역시 아버지에 대한 쓴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 애써 외면해온 것이다. (77)

나는 이 문제를 놓고 깊이 기도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77)

이 일이 어린 나에게 오래 남았던 것 같다. 이미 잊혀진 사건이자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일을 성령님께서 기억나게 하신 것이다. 왜일까? 하나님께서는 비록 작은 것이라도 그것이 나의 정신과 마음에 영향을 끼친다면 해결해주기 원하셨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가족간에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을 회복시키기 원하셨다.(78)

문제는 우리가 받는 많은 상처가 자신의 자아 문제 그리고 자신에 대한 집착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문제의 원인을 외부가 아닌 자기 내부에서 찾는 연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처를 받고 또 그것을 오래오래 간직하는 배후에는 자기연민과 자기애가 있다. 문제는 상처를 받고 안 받고가 아니라 받은 상처를 어떻게 건강하게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 해결 받느냐에 있다. 정면으로 내 속에 있는 문제를 보기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상처를 받으며 살아간다. (79)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상처를 해결하기 위한 어떠한 조명도 받을 수 없다. (79)

사실 내가 상처를 받게 된 원인은 환경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나의 내면에 특정한 자극을 상처로 받아들이는 메커니즘이 또 다른 원인이 되었다.(80)

이 싸움에서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의 내면에서 상처를 유발하고 확대시키는 기제를 막는 것이다. (80)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죽어야 한다. 이것이 성경에서 제시하는 더 근본적인 방법이다.(80)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특정한 상황 가운데 나를 힘들게 한다. 그러나 힘들어 하는 내가 죽으면 문제도 같이 죽는다.(80)

우리가 우리의 상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해도 좌절하고 마는 이유는 나는 살고 문제만 제거하려는 인본적인 노력, 그 노력이 종국적으로 실패하기 때문이다. (82)

자신의 죄를 해결하는 유일한 해결책은 예수님과 함께 나도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다. 어쩌면 주변을 향해 쌓고 있는 방어벽을 무너뜨리는 것이 더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상처 해결책이 된다. 내가 나를 보호하려 하거나 보복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주님께서 나를 보호해주시고 위로해주시기를 바라는 것, 겉보기에 피동적으로 보이지만 이것이야말로 확실한 대책이다. (82)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실 때 그의 영혼까지 함께 치유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병이 나았음을 선포하시기보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선포하셨다.(82)

죄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상처는 중독성이 있다. 특히 마음의 병인 경우 우리는 상처가 치유되기를 바라기보다 상처를 되씹는 경우가 많다.(83)

상처를 받았을때 상처를 해결하는 방법
첫째, 자신이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과 또 상처받을 수 밖에 없는 약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둘째, 내 안의 어떤 문제가 상처로 아프게 반응하는지 볼 수 있는 눈을 달라고 성령님께 구한다.
셋째,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또 상처를 치유해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간다.
넷째, 자기연민의 감정과 자기자아에 대한 집착을 온전히 십자가에 못 박기를 간구한다.
다섯째, 이 문제를 해결하고 관계된 자들을 용서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을 달라고 구한다.
성경은 적극적인 용서가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가르친다. (83)

 

프롤로그 (정리 윤지은)
1부 자기애 내려놓기 (정리 윤지은)

2부 자기의 내려놓기 (정리 장안리, 김문희)
3부 더 더 내려놓기 (정리 김근배)
에필로그 (정리 김근배)

 

편집: 구일모, 김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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