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tee 의 영성
 황지성       
 KBS - NIH 직장인 성경공부 그룹      
 
 
황지성

좋은 멘토들은 비록 그 과정이 다르기는 하지만, 모두 다 멘티로서의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나, 멘토링을 멘티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기보다는, 멘토의 역할만을 지나치게 강조해왔던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의 틀 안에서는, 멘티란 수동적인 자리에 있는 존재로 인식되어진다. 관계 형성의 초기단계에서는, 자신이 어떠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지 조차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며, 멘토와 멘티의 관계가 어느 정도 지속된 상태에서조차도 멘토의 지속적인 도움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한 사람이 제대로된 멘토링을 받을 수 있는 멘티의 자리까지 간다는 것은, 상당한 훈련의 과정과 인격적 성숙이 요구될 수 있는 과정이다.

첫째, 멘티는 배우려고 하는 욕구와 의지가 있어야 한다. 멘티가 되려는 욕구는 자신이 자신의 삶의 어떤 특정한 부분에 있어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생각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혼자 해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이다. 아니, 좀 더 현실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삶의 이 부분은 배움이라는 과정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한편, 멘티가 되려는 의지는 멘토를 찾고 멘토와의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관계형성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성숙한 인격적 표현이다. 이것은 단순한 욕구 이상의 의지가 요구되는 일이다. 멘토와의 지속적인 관계속에서, 자신이 성장해야할 부분에 대한 솔직한 노출, 멘토의 지도와 가르침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교정, 때로는 전적인 신뢰등이 요구되는 힘든 과정일 수 있다. 많은 믿음의 선진들의 성숙해 가는 삶의 과정을 보면, 독립적인 성향의 종교적인 열심이 완전히 꺾이는 과정과 좋은 멘토를 만나는 과정이 병행되는 것을 본다. 주님의 공생애 기간동안에 제자들을 부르시고 멘토링하는 과정속에서 일어난 수 많은 사건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는, 제자들의 죄성이 가득한 독립적 기질의 옛 사람과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통한 새 사람이 치환(exchange)되면서 주님의 멘토링이 완성되는 것을 보게 된다.

둘째, 멘티는 멘토가 제시하고 생각하는 목표보다도 더 높은 것을 이루기 위해, 창조적인 발전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이것은 사실, 좋은 멘토가 멘티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멘티의 입장에서 보면, 멘토가 제시하는 목표가 나의 이해의 한계안에 갖혀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 보는 자세 혹은 능력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인 멘토와 멘티의 관계속에서, 좋은 멘토는 항상, 멘티의 현재적 위치와 능력을 넘어서, 그에게 더 큰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멘토라 하더라도, 많은 경우에, 그 가능성의 실체를 모를 수 있다. 그래서, 멘토는 그 가능성이 실제적으로 표현되도록 도우려고 하지만, 그 가능성을 가시화 시키는 것은 궁극적으로 멘티의 몫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멘티에게 필요한 것은, 멘토가 언어와 삶으로 보여준 목표, 그 너머의 것들을 그려볼 수 있는 통찰력이다. 최근, 일본의 분자생물학자, 히로키 우에다의 실례를 소개한다. 그가 좋은 과학자가 되기 위한 고통스러운 노력과 실패의 반복으로 생의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느 날, 자신의 존경하는 스승이며 멘토가 간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스승을 찾아가게 된다. 멘티인 히로키를 앞에 두고 스승 멘토는 자신의 손때가 묻은 한 권의 책을 건네주며 이렇게 말한다. “자네에게 이 책을 빌려주겠네.” 책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아, 히로키는 존경하는 멘토가 죽었다는 비보를 접하게 된다. 이때, 그의 마음속에 자리잡게된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자신의 죽음을 눈앞에 된 멘토는 왜 자기에서 이 책을 “빌려주겠네” 라고 말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책을 돌아가신 스승에게 어떻게 다시 돌려줄 수 있을까를 깊이 생각하게된다. 그리고 그는 멘토가 “빌려준” 책의 제목, <생명의 비밀>에 관한 근본적인 연구를 해냄으로써, 돌아가신 멘토에게 이 책을 다시 돌려줄 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된다. 이후, 수년간의 연구끝에, 그는 시간과 계절과 생명현상의 관련성을 밝히는, 소위 “circadian clock”에 관한 뛰어난 분자생물학적 연구의 결과들을 내게 되었고, 그가 최근에 Nature지등에 발표한 연구결과등은, 암을 포함한 인간의 질병을 좀더 통합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Systems Biology 분야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한 결과물들로 평가되고 있다. 비록 내용은 다르지만, 기독적 멘토링의 관점에서, 나는 이러한 종류의 통찰력을 ‘멘티의 영성’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영성은 말씀의 깊은 묵상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자라게 된다고 본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잠시 빌려주신 인생의 시간과 재능들을 어떻게 은혜에 보답하는 길로 쓸 것인가를 항상 고민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주님을 멘토로 삼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 멘티들이 깊은 통찰력을 받아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나의 솔직한 고백은, 항상 배움이 필요한 나로서, 멘토가 되기보다는 영원한 멘티이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셋째로, 멘티가 더 풍성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멘티로서만의 삶에서 떠나, 멘토가 되어야만 한다. 떠나기 위해서는 멘토가 가르쳐주는 일들을 충분히 습득해야하며, 멘토가 제시하는 목표를 어느정도 이루어야만 한다. 젊은 시절이 다 가기 전에, 이 목표를 어느정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젊은 시절, 멘티만으로서 살아갈 때에 그 분야에 대해 집중된 훈련을 받고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빠른 시기에, 멘티로서만 살아가던 한계를 벗어나, 할 수만 있다면 멘토가 되어야 한다. 물론 우리는, 멘토와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영원한 멘티로서 머물러야 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멘토로서 살아가는 삶의 과정을 통해서, 풍성한 삶을 대물림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멘토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관계들을 소수의 또다른 멘티들과 설정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중요한 것은, 먼저 멘티가 되는 것이다. 내 주변에서 멘토를 찾아 그 사람을 멘토로 만드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속의 인물들로 멘토들을 삼을 수 있으며, 언제든지 그들을 성경속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부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들을, 사람들을 통한 만남가운데에서 이룰 수 있도록 계획하셨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것은 성경공부그룹이나 교회, 믿음의 공동체 뿐만 아니라, 우리 직장이나 학교등 삶의 영역에서도 적용되는 원리라고 믿는다. 그런데, 성경속의 인물들과는 달리, 내가 필요로하는 삶의 멘토는, 항상 ‘거기’에 있는 사람이 아니고, 내가 찾고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다. Social Media가 극도로 발달된 이 시대이지만, 내가 진정 원하는 멘토를 찾고 만나기란 그리 쉬운 법이 아니다. 좋은 멘토들은, 많은 경우에, 자신의 한계이상으로 이미 멘토링을 하고있는 경우를 종종 발견한다. 그래서 좋은 멘토를 내 멘토로 만들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하지만 열심히 찾고, 다가가서 구체적으로 요청해야 한다. “당신은 이런 이런 일에 대해 제 멘토가 되어주시겠습니까?” 라고. 그리고 그가, “좋습니다. 멘토가 되겠습니다” 라고 기꺼이 말한다면, 이제는 나도 멘티로서 심각한 헌신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편집: 김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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