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느냐?
 오택일       
 KBS - University of Maryland      
 
 
오택일

그들이 아침을 먹은 뒤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 21:15)*

유나라는 2살짜리 딸아이가 있다. 그간 짧지만 아이를 키우며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기저귀 가는 것을 시작으로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이 연약한 생명을 24시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은 나에게 놀라운 도전이였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사랑이 대단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신기하게도 '사랑'이라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고민하게 된 것 같다. 한 생명의 아버지가 되어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 '아이에게 사랑 받는 것'에 대한 자연스런 배움의 과정에 들어간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아이가 나에게 어느날 처음으로 '아빠!'라고 했던 순간이었다. 아이와 매일 같이 살지만, 아빠가 오면 엄마가 쉬러 가기 때문일까? 유나는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좋아하기는 커녕 유나에게 아빠란 자기를 자꾸 찔러보는 그런 거무튀튀한 존재였던 것 같다. 그리고, ‘과연 이 조그마한 아이가 아빠라는 의미를 알까?’ 하는 질문도 들었던 듯 하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아빠!'라고, 날 부르더니, 매일은 아니지만, 내가 없으면 나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아내에게 듣게 되면 마음이 흐뭇해지곤 했다. '오호라! 유나가 날 안단말이지? 유나가 날 찾는단 말이지?' 유나가 조금 더 컸지만 지금도 나를 귀찮은 존재로 여길 때가 더 많은것 같다. 엄마처럼 자신의 필요를 잘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연! 정말 돌연 어디선가 '아빠! 아빠!'라고 날 찾기 시작할 때가 있다. 뭔가가 필요할 때가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무조건적으로 “아!빠!”하고 나를 찾을 때도 있다. 또는 갑자기 “아!빠~~” 하고 달려와서 내 다리를 붙잡고 늘어질 때가 있다. 솔직히 그 때가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기쁜 순간이다. '아! 아이가 나를 아는구나!! 아이가 나를 사랑하는 구나!!!' 하고 느낀다.

“아빠, 이거 까줘~ 아빠, 이거 여기...”

“아빠, 코! 아빠! 코오! 아빠! 뽀!로!로!”

아이가 이것 저것 부탁할 때는 귀찮지만, 그래도 그러는 유나가 괜히 대견하고, 자신의 필요가 있을 때 나를 찾아주는 것만으로도 기쁘며,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하다. 내 자식이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옆집 아저씨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바(아빠)”라고 부를때, “아바”라고 인식할 때, 하나님은 흐뭇해 하시며 미소를 지으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이야기에 귀기울이신다. “왜 나를 불렀누?” 또 갑자기 하나님의 품에 달려가서 안길 때, 하나님을 꼬~옥 안아드릴 때, 하나님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실 것이다. “뭐 해줄까? 택일아!!” 하시면서 말이다.

다시 호숫가에서 베드로를 만나셨던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여러번 물으셨을까? 만약 요한에게 그 비슷한 질문을 했다면 요한의 반응은 어땠을까? 예수님 품안에 안기길 좋아했던 요한은 예수께서 그런 질문을 하셨다면, 와락 품에 달려 들었을 것 같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랑하느냐? 물으셨을 때, 베드로도 예수님의 품에 안겼다면, 예수님께서는 그 다음 질문을 하시지 못하셨으리라... 예수님께 꼬옥~ 안기는 그 행동만으로 그의 마음이 예수님께 전달되었을 것이고, 예수님도 눈시울이 뜨거워 지셔서 더 질문을 하시지 못하게 되지 않으셨을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사랑하시고, 그런 자녀의 죄 혹은 실수는 따뜻한 그의 품에 안겨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기 때문에 더 질문 못하시지 않으셨을까? 따뜻한 사람의 느낌, 사랑받는 그 느낌. 이런 상황을 유치하다 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감동하는 것은 종종 유치한 것이며 우리가 받고 싶은 사랑도 유치한(단순한) 사랑이다.

요점은 여기에 있다. 나는 유나가 사실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안다. 유나가 내 수준에 맞는 어떤 것을 해줄 수 없다는 것도 난 안다. 그러면 내가 내 수준에 맞는 것을 유나에게 기대하는가? 그렇지 않다. 난 유나 수준(2살)에 맞는 사랑을 기대하고 있다. 유나가 나를 아빠로 알았으면 좋겠고, 유나가 내게 와서 나를 더 자주 안아주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시는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아이가 자라면 부모에게 그에 걸맞은 기대치가 생기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자꾸 나아와서 아빠를 외치는 것이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혹은 아버지 되심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로 달려가는 것, 이 두 가지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우리의 사랑의 시작이며,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으시는 우리를 기뻐하신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 자식이기 때문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2:7)**

 

 *표준새번역
**개역개정

 

편집: 김연미, 김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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