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신 곳에서
 주리아       
 KBS - University of Maryland      
 
 
주리아

“여러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꿈이 사람을 살리는 도구로 쓰이는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비전을 이루어 주시길 기도하십시오!”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1997년 1월 어느 날, 대학교 4학년이 되던 해 겨울에 우연히 참여했던 교회 수양회 마지막 날에 지금은 얼굴도 성함도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한 할아버지 목사님을 통한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마음 한 편에 장애 아이들을 향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이 일에 하나님의 뜻이 있으시다면 구체적으로 인도해 주세요.” 라고요. 그 기도가 응답 되어 13년이 지난 지금 저는 Maryland 주에 있는 한 작은 공립 초등학교에서 특수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의료계 공직에 오랫동안 몸담으셨던 아버지와 의사인 사촌오빠들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무작정 의사가 되고 싶은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대학입시에서 아픈 좌절을 경험하고 마음에도 전혀 없던 유아교육 학과를 간 것에는 지나고 보니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었습니다. 적성에도 맞지 않을 것 같은 학과에 진학하고 보니 모든 것이 불만족스러웠습니다. 재수는 어림도 없다는 아버지의 반대로 울며 겨자 먹기로 학교를 왔다 갔다 하는 세상에서 제가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심각한 자기 연민에 빠진 여대생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학기를 우울하게 보내고 있을 무렵에 우연히 학과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입학할 때에 막 미국에서 학위를 받으시고 제가 다니던 학교로 부임하신 여 교수님이셨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저에게 일대일 양육을 받아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하셨습니다.

6개월간의 학과 교수님과의 일대일 교제는 저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별다른 기대 없이 시작한 일대일 시간이 저에게는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아버지 되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시간이었고, 동시에 제가 얼마나 죄인인지 깨닫고 그런 저를 한없이 기다려 주시고 변함없이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인생에서의 첫 좌절과 실패로 상처를 받았던 제 자아가 말씀으로 치유되고 회복되는 경험도 하게 되었습니다. 흥미가 전혀 없었던 학과 공부가 재미 있어지고 제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달란트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일대일 양육 과정이 끝난 후에도 교수님의 지속적인 기도와 격려가 힘이 되었습니다. 유아치료에 관심이 많으셨던 교수님의 연구를 돕는 과정 가운데 특수교육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관련된 책을 접하면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져 갔고 교수님과 비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동안 마음 속에 가슴 설레는 꿈을 키워갔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학교 4학년이 되던 해 겨울, 진로를 위해 고민하던 중에 참석했던 수양회에서는 비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을 통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후 저에게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제가 속한 환경은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었지만 제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음을 알았습니다. 그 동안 수도 없이 지나 다녔던 거리, 상점 등 가는 곳마다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심지어 가족들과 쇼핑을 하거나 휴가를 가더라도 꼬옥 제 눈에만 그런 사람들이 밟혔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속으로 그 영혼을 위해 짧게 기도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걸음 한 걸음씩 제 삶을 그 분의 뜻대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메릴랜드 주에 있는 Johns Hopkins University에서 유아특수교육 석사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높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경험하였지만 2년 반의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때에 따라 돕는 손길을 예비해 주셨고, 한국과는 사뭇 다른 제도와 교육 과정을 배우는 동안 특수교육에 대해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 주셨을 뿐만 아니라, 좋은 교수님들과 친구들과의 만남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위해 기도하던 중 마음 속에 현장에서 직접 아이들을 만나 교육의 실제를 경험해 보고 싶은 열정이 생겼습니다. 모든 것들이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세계를 위해 다 준비가 된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더욱 간절히 기도했습니다.“하나님! 그 동안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잘 사용하여 앞으로 맡게 될 아이들을 잘 교육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Job application을 보내고 기다리는 3개월여의 시간은 인내심이 많지 않은 저에게 참으로 속이 타 들어 가는 듯한 기나긴 시간이었습니다. 담당자와의 연락이 안되고 아무리 기다려도 도통 기다리는 소식이 없어 답답했습니다. 더욱 간절히 기도했지만 마치 하나님께서는 저를 방치하시고 그대로 침묵하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12월에 과정을 다 마쳤기 때문에 이듬해인 5월에는 한국에서 어머니가 졸업식 참석을 위해 오시기로 예정되어 있어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조바심이 났습니다. 어머니가 오셨을 때 백수의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지 않은 내려놓지 못한 마지막 자존심 때문에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듣고 계시기나 하신 건지 의심이 생기고 믿음이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3월 중순을 넘어갈 무렵, 주일 예배 찬양 중에 무거웠던 마음이 녹아 내리는 듯한 경험을 했습니다. 찬양 시간 내내 저의 있는 모습 그대로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 놓고 주님만을 간절히 찾았습니다. 곧 이어 “세상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주제로 목사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창조주인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만 오직 수직적인 관계이고, 피조물들 간의 관계는 수평적 관계가 성립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 속하든지 세상을 섬기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가족과 주변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영혼들을 바라보고 섬겨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동안 KBS 성경 공부를 통해 수도 없이 섬기는 삶에 대해 지체들과 이야기 나누었고 “섬기는 것”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던 교만함이 제 안에 가득 차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지식적으로는 조금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사실 그것이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지 저는 잘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저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고 만족해 하면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장을 준비하고 기도하는 중에도 단지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들을 가지고 제가 앞으로 맡을 아이들을 이해하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잘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했지 영혼을 섬기는 것과는 별개인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제가 영혼들을 아버지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그 영혼들을 섬기기를 원하셨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제가 단지 아이들보다 나이가 많고 조금 더 배웠다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가 마치 제 뜻대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려는 교만함이 제 마음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영혼을 바라보지 못한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곳이 어디든지 허락하시는 영혼들을 아버지의 마음으로 한없이 사랑하도록 도와 주세요.” 눈물로 범벅이 된 채 교회 마당을 나온 제 안에는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 놓은 자유함과 깨달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으로 가득했습니다.

바로 다음 날인 월요일 이른 시간부터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수없이 전화를 했기 때문에 외울 정도로 많이 익숙한 번호였습니다. 바로 그 동안 직장 때문에 가슴 졸이며 버튼을 눌렀던 Human Resource 에서 온 전화였습니다. 한참 동안 연락이 두절되었던 담당자는 제가 전화를 받자마자 상냥한 목소리로 교장 선생님과의 인터뷰 날짜를 잡으라고며 학교 전화번호 하나를 불러 주었습니다. 전화를 끊자 마자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에 전화를 해서 바로 교장 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다가오는 수요일로 인터뷰 날짜를 잡게 되었습니다. 몇 달 동안 기다렸던 순간이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나서 전화를 끊고도 한 동안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처음 가는 길인데 혹시나 길을 헤매 인터뷰 시간에 늦을까 이른 아침부터 서두른 탓에 인터뷰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먼저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학교를 확인하고 주변을 둘러 보던 중 페스트푸드점을 찾아 그 곳에서 그 동안 인터뷰를 위해 준비했던 포트폴리오와 예상 질문들을 생각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그 날은 교사들 professional development day였기 때문에 아이들은 학교에 오지 않는 날이어서 그런지 학교가 무척 조용했습니다. 인터뷰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말을 하는 것 보다 교장선생님께서 학교에 대해 소개해 주시고,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주시는 등 거의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Maryland 주에서 가장 큰 County이지만 가장 가난한 곳, 부모의 보살핌이 그리 많지 않은 누군가의 사랑이 필요한 곳이라고 말씀해 주시면서 금요일에 아이들을 보러 다시 학교에 오라고 했습니다.

학교를 다시 찾아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감격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아이들은 자신들과 다르게 생긴 낯선 저에게 손을 내밀며 너무나 반갑게 맞아 주고 저에게 다가와서 안겼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학교와 아이들에게 적응을 못하고 중간에 그만 두었기 때문에 5개월 이상 substitute 선생님들에 의해 반이 운영되어서인지 교실은 마치 회색 빛의 공장같이 어둡고 여기저기 정리의 손길이 필요한 것이 보였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되어 있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치워주고 예쁘게 꾸며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아이들을 뒤로 하고 교실을 나오는데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이 곳이 하나님께서 부르신 곳일 수 있겠구나’ 하는 어떤 확신이 생겼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오는 월요일부터 출근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아이들을 사랑하고 인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냐고 물었습니다. “Yes”라고 대답하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미국에서의 첫 교사생활이 어느덧 5년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아이들 때문에 웃기도 울기도 참 많이 했습니다. 표현을 하지 못했던 아이들이 한 마디씩 배워서 말을 시작할 때, 이름을 쓰는데 거의 1년 이상 걸리는 아이들이 이름을 처음 혼자 썼을 때, 혼자 화장실을 가지 못했던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 했을 때 참 감사하고 보람을 느낍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집 앞에서 꽃을 뜯어 꼬옥 쥐고 와서는 쑥스러운 듯이 내미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제 손에 전해졌을 때는 이미 꽃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지만 저를 생각한 그 마음이 너무 기특하고 순수해서 감동할 때도 많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그런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참 기뻐하실 거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무턱대고 책상 밑으로 들어가서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가 한참 제 속을 태워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슬쩍 나오거나, 화가 나면 감정 조절을 못하고 아무 거나 눈에 보이는 대로 집어 던지기도 하고, 자기 뜻대로 못하게 하면 하루 종일 울어대는 등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게 힘들게 할 때도 많습니다. 참 가슴이 아픈 일도 많았습니다. 깨어진 가정환경 속에서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해 아파하는 아이들을 볼 때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말로 표현은 잘 하지 못하지만 매일 만나지 못하고 몇 주 만에 만나는 엄마나 아빠가 문득 생각나면 “daddy” 또는 “mommy”라고 부르며 슬피 우는 아이들을 보면 참 가슴이 짠합니다. 예측 불허의 일들이 자주 생기기 때문에 한 순간도 방심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순간 순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할 때가 많습니다. 제 힘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에 더욱 주님께 매달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덧 매일 자기 전 아이들을 한 명씩 떠올리며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저의 제일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올 해 하나님께서는 다섯명의 아들과 한명의 딸을 저에게 보내주셨습니다. Down syndrome, autism, intellectual disability 의 각기 다른 장애를 가진 아이들입니다. 각자 개성이 다르고 발달 수준이 달라서 각자에게 맞는 교육 자료들을 일일이 준비하고 가르치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인내와 사랑 뿐 아니라 강한 체력도 필요로 합니다. 말로 의사 소통을 잘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의사 소통에 많은 어려움도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기구를 사용하여 의사 소통을 하지만, 무엇을 원하는지 표현을 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막 울어 제끼면 대책이 없습니다. 그럴 땐 간절히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소변 훈련이 안된 아이들도 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사고를 치면 보조 선생님이 계시지만 모든 것을 중단하고 수습을 해야 할 때도 많습니다. 특징이 각기 다른 아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리고 그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그 안에서 제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어 깜짝 놀랄 때도 참 많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 아버지의 저를 포함한 인간들을 바라보시는 마음이 어떠실 지 조금이나마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사실 영혼을 섬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들이 아파할 때 같이 아파하고, 웃을 때 같이 웃고, 울을 때 같이 울어 주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만져 주시길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제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임을 알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면서 매일 주님께서 저와 저와의 만남을 허락하신 아이들과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 인도하실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빚진 자로서 하나님께서 부르신 곳이면 그 곳이 어디든지 주님이 생각하시는 마음과 주님이 말씀하시는 목소리와 주님이 보여주신 삶과 주님이 도우시는 사랑의 손길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매일 주님과 함께 살아감으로 하나님을 더욱 알고, 그 분을 더욱 사랑하고, 그 분이 저를 통해 하셨던 일들을 통해 하나님을 소개하는 제 삶이 주님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살아있는 간증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편집: 허수진, 김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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