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A - 필레오에 관하여
 이일형       
 KBS - 대표 간사      
 
 
이일형


1. 필레오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먼저 필레오를 설명하기 전에 사랑에 대하여 논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인간, 혹은 창조, 는 사랑의 표현 입니다. 모든 “작품”이 어떤 예술가의 표현인 것처럼 모든 사람은 사랑의 표현 입니다. 사랑이 표현되었기에 인간은 창조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타락함으로 원래의 “걸작품”의 영광을 상실 했습니다. 마치 전기 공급이 끈긴 전구의 불이 꺼지는 것처럼 되어 버린 것이지요. 타락 이후 우리는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남은 것은 사랑이 있었던 흔적뿐 입니다. 그 남은 흔적은 부모의 헌신, 친구의 우정, 부부의 사랑 등 에서 볼 수 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을 필레오라 합니다. 이런 사랑은 한계가 있습니다. 육체가 되었기에 육체적 (본능적) 차원을 넘지 못합니다. 자기가 중심에 있는 이기적 사랑 입니다.


2. 필레오가 새로운 시작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랑을 상실한 인간의 현 상태는 마치 제 정신을 잃어버린 사람이 비 이성적 행동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왜 이 땅에 있는지 잊어 버린 상태 입니다. 사랑이 없기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이유를 상실해 버렸고 그렇기에 이 세상을 보는 눈이 삐뚤어 졌습니다. 빛이 있을 때 색을 구분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랑이 있을 때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셔서 우리를 다시 사랑의 본질과 연결 시켜 주셨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3년간 그 작업을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필레오의 답변은 그런 의미에서 일반 “필레오”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의 답변은 사랑의 본질과 재 연결된 결과로 사랑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면서 하는 고백이었기 때문 입니다. 사랑과 재 연결되었다고 순간적으로 찌그러진 타락상이 펴지지 않습니다. 다만 찌그러진 상태에서 사랑을 부분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그 찌그러진 상태의 모습에 사랑을 연결시켜 주었을 때 나타난 새로운 표현 입니다. 마치 식물인간이 된 베드로를 주님께서 3년 동안 계속 마사지로 치료해 주신 후 “움직여 봐” 했을 때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리는 행위와 도 같습니다.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을 덮었기에 그 찌그러져 있는 모습 그대로 응답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베드로의 필레오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3. 육신의 한계를 입은 인간으로서 사랑할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베드로의 필레오의 고백은 사랑할 수 없다는 비명 입니다. 찌그러져 있다는 현실의 외침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찌그러져 있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는 고백의 몸부림 입니다. 소아마비로 정신 장애자가 자기가 좋아하는 자기 부모를 보았을 때 이상한 소리를 지르는 것과도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들을 때는 시끄럽고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 소아 마비된 자의 부모에게는 기쁨의 소리입니다. 베드로의 필레오의 고백은 능력 없음의 인정 입니다. 바로 그것에서부터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찌그러진 상태가 펴져 가면서 온전하게 전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4.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고 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사랑은 예수님의 본질 이며 그 본질의 첫 표현의 설계도 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설계도에 의하여 표현 되었기에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고 전한다는 뜻은 그 설계도를 설명해 주고 표현 하도록 돕는 다는 뜻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역을 “제자 삼는 일”로 명하셨습니다. 제자는 찌그러진 것이 펴지는 훈련 과정을 거치는 것이고 이는 삶 전체로서 표현 되는 것 입니다. 이 땅에 있는 동안 끝 없이 훈련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그냥 사랑하겠다는 의지로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항복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변화에서부터 시작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필레오의 고백처럼 말입니다.


5. 현세대의 한국인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데 있어 특별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나 이슈 (예, 기존에 잘 감당해오지 못한 부분 포함) 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기독교가 종교화되었습니다. 성령님의 운영하심을 담을 그릇은 이 세상에 세대를 막론하고 항상 필요하나 그 그릇 자체가 성령님의 운영하심을 방해하기 시작하면 그릇을 깨야 합니다. 그 그릇을 지키기 위한 요구 사항들이 많아지기 시작하고 사람을 살리는, 즉 찌그러진 것을 펴는, 사역이 줄어 듭니다.

찌그러진 것을 펴는 사역은 삶의 모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말씀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종교를 지키기 위한 교리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혼미한 가르침들이 지배하는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많은 가르침들이 진리를 모방하고 사람을 현혹하여 사람들은 확신을 가지고 자신들의 생각이 이끄는 대로 살아 갑니다. 오직 말씀을 분별하는 자만이 참된 회복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6. 학생 혹 젊은 직장인으로서 인생의 처한 시점 혹 단계에서 으로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특별히 중점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을 꼽으시겠습니까?

Eccl 12:1 Remember your Creator in the days of your youth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질문, 편집: 김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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