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
“함께 가는 (증인들)”—창조의 대칭의 표현
 이일형       
 KBS - 대표간사      
 
 
이일형

“함께”라는 뜻은 크게 “마음을 같이한다” 또는 “일을 함께 한다” 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즉 예를 들자면 마음을 함께 함은 영화를 보면서 함께 눈물을 흘린다 (다른 관람자들과 함께); 연설을 들을 때 고개를 끄떡인다 (연설자와 함께) 등의 예를 들 수가 있습니다. 반면에 일을 함께 함은 자동차 생산 라인 여러 단계에서 각 부품을 조립한다 (다른 노동자들과); 친구들끼리 모여 등산을 간다 (등산 동반자들과); 고속버스 안에서 같은 목적지로 가고 있다 (합승한 사람들과) 등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함께 가는” 증인들이란 무슨 뜻일까요? 교회의 같은 부서에서 봉사한다 (같은 교인); 선교지에서 함께 유치원을 운영한다 (동료 선교사); 캠퍼스에 있는 같은 그룹에서 활동한다 (동료 간사)등 입니까? 이런 유형의 “함께”는 성경에서 말하는 “함께 감”의 본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삶이 “함께 감”의 본질에 기초해 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외형적 모습일 뿐 입니다. 또한 이런 외형적 모습이 있다 하여 그 본질이 있음을 증명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성경에서 말하는 함께 감의 본질이란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성령님께 사로 잡혀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일컬어 함께 가는 증인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엡4). 이런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즉, 서로를 알아 보고, 지나간 흔적에 항상 의(십자가의 의)가 드러난 향기로움이 있고, 서로 자연적으로 뭉치게 됩니다. 

 

서로를 알아 본다.

복음의 본질에 기초한 사람들은 사역의 초점이 “생명” 전함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이 목적을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한 그릇(지역교회 혹은 선교단체)의 필요성은 알고 있지만 그 그릇자체에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자유 합니다. 또한 그 그릇을 통하여 자기 자신의 자존감을 얻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중심이 다른 사람들의 설교나 체제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말씀에만 있습니다. 생각의 모든 뿌리들의 근거를 살펴 올라가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만나서 잠깐만 대화를 해도 또 어떤 경우는 얼굴만 보아도 서로 알아 봅니다.

 

의가 드러난 향기로움이 있다.

본질에 기초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선과 악의 구분이 드러나고 찌그러진 것이 펴지고 상처가 치유되는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이런 일들이 펼쳐져 가는 과정들이 외형적으로는 흔히 분쟁으로 들어납니다. 이는 불의가 물러날 때 항상 저항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열매를 맺게 되고 그곳에 성령의 향기가, 즉 사랑이 넘쳐나기 시작합니다. 본질이 없는 사람들의 분쟁에는 열매가 없습니다. 그들이 지나간 곳에는 자신들의 의가 드러나서 죽음과 좌절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현상을 보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서로 뭉치게 된다.

위에서 말한 회복의 역사가 있는 곳에는 본질에 기초한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몰리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은 본질의 지배를 받아 창조의 질서대로 사랑으로 뭉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또한 육신적으로 같이 사역을 하지 않아도 서로 동역하고 있음을 압니다. 씨를 뿌리든 물을 주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또한 무엇을 주어서가 아니라 함께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만으로 서로에게 위로가 됩니다. 때로는 함께 고민하고 함께 웃고, 또 함께 우는 그런 동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부모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자식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신분에 걸맞는 자식의 성취 및 학벌, 결혼, 사회적 위치, 혹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목적을 대신해 줄 수 있는 그런 자식이 필요합니다. 반면에 어떤 부모는 자식을 위하여 자신들이 존재합니다. 자식의 참 사람됨, 참된 인생을 누릴 수 있도록 자신들의 모든 것을 내놓는 사람들 입니다. 그런 부모들에게는 자신들의 체면이나 위신 등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본질에 기초해 함께 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들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필요로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기에, 피조물의 가치보다도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이 더 큼을 십자가를 통하여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더 귀함을 알게 되는 사람들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신 것이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사랑하시기 때문에 창조가 이루어 질 수 밖에 없었던 것과 같습니다. 또한 창조의 속성인 사랑의 지배, 즉 십자가의 결과로 말미암은 지배를 삶 가운데 받고 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함께 가는 것입니다. 함께 가는 증인들이란 우리의 존재함이 대칭성에서부터 오는 결과임을 아는 사람들 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