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전문 칼럼
보이지 않는 것 분별하기
 신혜선       
 KBS - OSU      
 

 

편집자 주: 이번 호 부터 전공/전문 칼럼을 개설합니다. KBS 지체 중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 (전공, 직업)에서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느끼는 것들이나 부딪히는 고민등을 자유롭게 나눠주실 분은 kbswebzines@gmail.com 으로 기고 부탁드립니다.

 

신혜선안녕하세요, 현재 The Ohio State Univ.에서 Arts Policy and Administration을 전공하고 있는 신혜선입니다. 저의 전공을 밝히며 시작하는 이유는,지금부터 나누게 될 주제에 대해 제가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해하시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입니다. 이 글을 통해 현재 ‘세상’에 널리 퍼져있는 (predominant) 포스트모던적 가치관 또는 이념과 이에 대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시각과 태도에 대한 저의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주제에 대한 생각은 아직 정리되지 않고 계속 변화(evolve) 되고 있는 터라 조금은 두려운 마음입니다.

일반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개념과 현상으로 다양성, 세계화 (difference, plurality, and globalization)등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공통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는 세상의 어떤 것도 한 가지로 ‘정의’되어 질 수 없다는 것인데, 즉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가지고 있는 배경과 경험에 따라, 한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해석은 수 천, 수 만 가지가 될 수 있고, 더불어 그 다양한 해석 또는 이해(understanding)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 이 개념이 내포하고 있는 논지입니다.

개인적으로 모든 나라와 민족, 인종이 각각 고유의 가치와 문화에 따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그것들이 존중 받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 하나 다르게 창조하셨고 그에 맞게 다른 소명과 은사를 주셨다고 믿기 때문이죠. 그러나, ‘단 하나의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주장이 왠지 불편하게 여겨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정의’ (definition)와 ‘진리’(truth)라는 개념이 상호 교차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지의 여부는 명료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오직 그리스도 한 분 만이 진리가 되신다는 것과 그 어떤 것도 한 가지로 정의될 수 없다는 주장이 서로 첨예한 갈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진리가 해석되고 받아들여지는 방법과 채널은 다양할 지 모르겠으나, 그 핵심된 진리는 하나라는 믿음이 포스트모던적 가치관과 부딪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얼마 전 교회에서Good Friday예배를 드리며 요한복음을 묵상할 때 눈에 들어온 말씀이 있습니다.

37.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네가 말한 대로 나는 왕이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가 하는 말을 듣는다." 38. 빌라도가 예수께 "진리가 무엇이냐?" 하고 물었다. <요한복음 18장 37-38절 중, 표준새번역>

38절에 기록된 빌라도의 질문이 마치 이 세상이 우리에게 도전하는 것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렇지만 아마도 우리가 “진리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직접 받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닐 겁니다. 세상을 유한적으로나마 손에 쥐고 있는 그 세력은 지능적이고 교묘하게, 다양한 채널을 통해 그 도전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고, 또 때론 그 질문으로 우리를, 우리의 믿음을 흔들기도 합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메시지를 강요할 때에 즐겨 쓰는 채널 중 하나가 문화와 예술이 아닐까 합니다.

문화/예술을 공부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이것의 결과나 산물이 눈에 보여지는 것이 아니며 그 영향력을 수치로 측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학계 또는 교육 분야에서 예술을 ‘쉬어가는 페이지’ 정도로 여길지 모르겠으나, 이런 ‘무형’이란 특징으로 인해 그것이 우리의 정서, 더 나아가 영과 가치관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은 경제나 정치 분야 이상으로 클 수 있습니다.

이런 문화/예술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예로 공포 영화 장르를 들어볼까요?. 저는 공포 영화를 즐겨보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공포 영화는 영적인 소재나 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룹니다. 그것이 악령이 될 수도 있고, 또는 그것에 사로잡힌 악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도 있지만, 보통 그 정도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힘없고 정의로운 영화 주인공들은 그 악령과 맞서 싸우거나 도망을 다니다 처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다른 방식의 종결이라면 선한 주인공이 장렬하게 싸움을 싸우고 승리를 쟁취한 줄 알았으나, 악의 씨앗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있음 암시함으로 후속편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이토록 뻔하고 천편일률적인 개요를 관찰해보면, 마치 공포 영화들은 ‘악’의 존재에 대해 하나같이 반복적으로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칫 절대적으로까지 비춰질 수도 있는 강력한 힘과 권력을 소유하고 있는 그 ‘악’에 대해 동의 (또는 굴복) 하지 않는다면 피할 수 없는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 말입니다.

이런 일반화에 적용되지 않는 영화들도 있겠지만, 이 해석은 저로 하여금 “분별”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 이면에 그것을 지탱하며 구성하고 있는 이념이나 메시지를 보고 그것이 주님 나라에 속한 것인지 아닌지 분별할 줄 아는 능력, 그 지혜야 말로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헛된 것에 속지 않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에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 해 보게 되었습니다.

학교 커뮤니티에 속해있든 졸업 후 다른 공동체에 속해있든, 우리가 지금껏 받아온 그리고 받고 있는 교육의 목적이 단순히 안락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게는 이 생각의 여정이 내가 왜 지금 이 자리에서 이 학문을 연구하고 있는가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이를 통해 작은 부분이나마 소명을 발견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원하는 것은 지금 세상을 주님께서 주신 분별의 눈으로 바라 볼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하고, 그 모든 과정의 근본이 되시는 주의 말씀을 더욱 알아가고자 하는 다짐을 기억하며 살아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분별의 지혜와 능력을 더하셔서 세상의 속임에 미혹되지 않고 주의 진리에 굳건히 뿌리내리는 주의 자녀가 되기를 기도하며 글을 마칩니다.

 

*신혜선 티칭코디님은 현재 Ohio State University (OSU)에서 Arts Policy and Administration 박사과정을 밟고 계시고, 이번 학기부터 OSU KBS 개척하여 티칭코디로 섬기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