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부르신 곳에서
 지혜경       
 KBS - SPC      
 

 

 

현재 내가 사는 Lubbock, TX라는 곳에서 약 40마일 떨어져 있는 South Plains College에서 피아노를 가르친 지 벌써 올 해 가을에 다섯번째 해로 들어섰다. 광야 같은 텍사스를 벗어나 나무도 많고 언덕도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좋겠다고... 제발 다른 곳으로 보내만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직장을 준비했었는데, 하나님은 오히려 나무도 적고, 너무나 평평해 하늘인지 땅인지 그 맞닿은 곳이 별로 구분이 가질않는 이곳... 때때로 마른 풀을 뜯는 검은 소들을 볼 수 있는 황무한 땅을 지나야 나타나는 작은 마을의 학교로 나를 인도하셨다.

KBS 말씀묵상훈련을 받았던 2008년 가을에 나는 코스타에서 구입했던 이용규 선교사님의 “더 내려놓음”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내려놓음”의 후속편인 이 책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내려놓는 일 뿐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삶 가운데서 더욱 내려놓기 힘든 자아를 내려놓는 것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그때 무뎌질대로 단단해진 나의 모태신앙의 매너리즘을 말씀묵상훈련을 받으며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셨다. 그런데, 그런 내려놓음의 이야기들 사이로 내게 눈에 띄는 단어 하나가 있었다. “교수사역자”... 그때에는 캠퍼스 성경공부에 대한 생각도, 소명도 없었는데 나는 이 단어를 내 방 구석에 써 붙여 놓았다. 사역이라는 것이, 단순히 성경공부만을 하는 것이 아닌,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께 어떠한 commitment를 드려야 하는 일인지 구체적으로 결단하지 못한 채 적어놓았던 것 같다.

그렇게 한학기, 그리고 그 다음 학기가 흘렀다. 한국학생들이 손에 꼽을만큼 적은 이곳의 상황들과 저녁 늦게야 음대건물을 빠져나오는 바쁜 학교의 동굴생활은 내게 말씀 전하는 일에 대해 excuse할 수 있는 바람직한 이유가 되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캠퍼스 성경공부에 대한 마음의 부담감이 점점 무거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 지 잘 모르는 두려움이 커서 모태신앙의 약점인 ‘못해신앙’의 똥고집이 내 안에 가득차 있었다. 이런 못난 모습은 어느 집사님의 세미나 중, 성경공부의 시작은 숫자 2로부터 시작이 아닌, 숫자 1... 즉 내가 혼자 있는 그때부터가 시작이라는 말씀에 깨어졌다. 결코 나 혼자가 아닌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셨다.

그 후, 2010년 봄학기에 성경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참고 기다리셨을까... 이런 부족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감사하게도 한 자매님을 보내주셨고, 얼마후에 한 형제님도 성경공부에 조인하게 해 주셨다. 피아노를 치며 하나님께 함께 찬양을 드리고, 우리의 삶을 나누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나눴다. 그동안 한국예배에 목말라하고, transfer를 준비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학생들과, 외롭게 직장생활을 하던 내게 말씀을 통한 만남은 서로에게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수업이 없는 금요일이어도 먼 길 마다않고 한국음식을 그리워하는 두명의 학생들에게 Lubbock에 있는 한국식당에서 음식을 픽업해서 차 안에 온통 음식냄새를 진동하며 신나게 운전해 갔던 그 때가 참 감사하고 행복했다.

이제 그 학생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고 나는 다시 홀로 남았다. 그 후로 다른 한국 학생들과의 만남이 있었지만 그 만남들이 성경공부로 이어지는 일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올 해, 유난히도 뜨거웠던 텍사스의 여름이 지나고 가을학기가 시작되었다. 어찌된 일인지 매 학기 한국학생이 그래도 몇명이라도 있던 때와는 달리, 이번학기에는 한국학생이 없다. 캠퍼스 성경공부는 스케줄에 따라 시작되었는데 아직도 하나님과 나, 단 둘 뿐이다. 예전에는 학생들의 영혼에 대한 목마름이 덜했는데.. 요즘에는, 검은 머리의 학생이 내 앞에 지나가면 일부러 빨리 걸어가 앞모습을 쳐다보며 혹시나 한국학생일지도 모르는 설레임에 확인을 한다.

이번 학기에는 예전에 학기초에만 하던 캠퍼스 땅밟기를 매주 하고 있다. 성경공부를 함께 할 사람이 없는 대신, 우리 학교 전체 학생들 뿐 아니라 교수와 직원들까지 인종과 전공을 넘어 마음에 품고 중보해야한다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셨다. 금요일 저녁마다 하나님 아버지와 나는 함께 말씀을 대하고, 기도의 시간을 가진 후 건물밖으로 나간다. 맨처음에는 캠퍼스 맵을 출력해서 들고 다니며 무슨 건물인지 그 방향을 향해 기도하며 걸었는데, 지금은 일부러 지도없이 각 건물의 문 앞까지 걸어가 내 눈으로 직접 어느 곳인지 확인하고 그곳을 위해 더욱 구체적으로 기도한다.

학생들의 활동이 가장 많은 Student Union 건물을 거쳐 Administration Building, Library 등등.. 캠퍼스의 건물과 건물 사이를 걸으며 각기 다른 전공마다 하나님께서 학문의 주인되어 주시길, 가르치는 자들과 배우는 자들 사이에 예수님의 사랑이 있기를, 모든 행정적인 일들 가운데 하나님의 정의가 있기를, 식사를 담당하는 곳 가운데에는 건강과 위생이 무너지지 않기를 위해 기도 드린다. 특별히 학생들이 머무는 기숙사를 지날때에는 학생들의 삶의 모습들이 거룩하고 순결하기를, 그들이 애쓰는 미래를 향한 꿈들이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이뤄지기를, 그리고 진리의 기준이 모호해지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에 참 진리이신 예수님만이 그들의 삶의 주인되어 주시기를 기도 드린다. 때로는 캠퍼스의 건물 사이가 아닌, 캠퍼스의 가장자리 territory를 밟으며 젊은 학생들이 사단으로 부터 공격받기 쉬운 문화와 삶의 영역을 놓고, 하나님의 영적인 주권이 임해주시길 선포하며 기도한다. 아래 사진은 내가 기도할 때 꼭 지나가고, 또 가끔 앉아 머물면서 묵상하는 곳이다.

지금 이곳에서 보내는 이 시간들 가운데 홀로 하나님을 대면하고 훈련되어지는 시간들이 때로는 외롭지만, 그래도 참 감사하다. 하지만, 열매맺지 못하는 사역에 늘 마음이 무겁고 죄송하다. 무엇하나 드러낼 것이 없는 모습인데, 얼마전 혹시라도 지금 나와같이 어디선가 홀로 강의실을 지키는 동역자 간사님들을 위해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약 일주일을 망설였던 것 같다. 그때 하나님께서 신명기 말씀을 통해 나를 위로하시며 용기를 주셨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신명기 7:6-9a

말씀 가운데 내 이름을 넣어 읽었다. 이 말씀 붙들고 캠퍼스를 걸으며 기도하는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모두 아신다고... 지금 밟는 이 땅을 품어줘서 고맙다고... 나를 택하시고 이곳에 보내신 이유가 내가 작은 자이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나를 참 많이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는 것만 같았다.

이전에 나는 늘 이곳에서의 삶을 광야생활이라고 표현했었다. 외롭고 척박한 삶이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기에 행복하다고... 그렇기에 기름진 광야라고 고백하곤 했었다. 그런데 그 어떤 상황이 전혀 바뀌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부터 하나님께 다른 고백을 드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른다며 늘 하나님 한분을 꼭 붙들고 걷던 광야가 아닌, 이제는 내가 걸어가고 있는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지 그 목적지가 뚜렷이 보이는 길. 세상의 다른 어떤 길도 아닌 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길 되셔서 앞서 가고 계신 “외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고백드린다.

오늘도, 눈에 보이진 않아도 너무나 뚜렷이 이 십자가의 외길을 함께 걷고 계신 성령 하나님의 동행에 감사드리며, 작은 나를 택하시고 오히려 기뻐하시는...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삶을 다해 높여드리길 기도 드린다.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사도행전 2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