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
증인들(Witnesses)*
        
 한경준 (UTK KBS)      
 
 
 * 이 글은 작년 10월 DC 지역 전체수양회 때 필자가 전한 주제말씀 중 일부를 재편집하여 쓴 글임을 밝힙니다.

올해 KBS 주제인 “함께 가는 증인들”에 해당하는 주제 성경구절 사도행전 1:21-22을 보면 제자들이 가룟 유다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한 사람을 더 뽑아서 “부활의 증인(a witness of His resurrection)”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증인”이라 함은 자신이 보거나 듣거나 체험한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따라서 “(예수의) 부활의 증인”이라 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경험하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도행전 초반에 나오는 사도들의 설교를 보면 그 구조와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말씀”도 아니고 “예수의 십자가”도 아니라 “예수의 부활”을 전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의 부활이 그 분이 이 땅에 사셨던 당시에 어떠한 의미가 있었는지 생각해 보고, 이를 바탕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건네주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를 생각하려면 먼저 예수님의 죽으심이 당시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고 어떠한 질문을 던졌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정치적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에 대한 기대와 열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예수님이 너무도 힘없이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후에 사람들은 실망과 좌절, 후회와 혼란 속에 빠지게 됩니다.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그들이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는)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에 대해 소망을 갖고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눅24:19-21). 요한복음 21장 초반에 나오는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 자신의 삶의 의미와 방향성에 대해 크게 혼란을 겪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좇았다고 자신있어 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행보는 – 비록 다시 부활하셨더라도 – 그들이 꿈꾸어왔던 혁명 프로젝트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고, 그들이 갖고 있던 소망, 그들이 열망하던 새 나라, 그리고 이를 위해 그들이 버리고 희생했던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듯한 생각이 들게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이처럼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그들이 보았던 예수님의 사역, 그들이 들었던 예수님의 선포, 그리고 그들이 배웠던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무효화(nullify) 시키기에 충분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그의 사역과 선포와 가르침을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무효화시켰다면, 예수님의 부활하심은 이것들을 다시 살려내고 확증하게(verify) 됩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예수님을 알아본 뒤에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끼며 가던 길을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눅24:31-33). 부활 후 갈릴리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라는 첫 부르심을 다시 주시면서 “내 양떼를 먹이라”는 사명을 위임하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게 된 사람들은 예수님이 행하셨던 사역과 선포, 그리고 가르침들이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것을, 무력한 것이 아니라 생명의 힘이 있는 것임을, 실패한 혁명시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낮아짐과 순종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람들이 버리고 떠나려 했던, 또한 마음 속에 묻어두려고 했던 예수님의 선포와 가르침으로 다시 발길을 돌리게 하는 초대장과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0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도 “예수의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셨던 “그 길(the Way)”이 진리의 길이고 생명의 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확증하며 살아가는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 중에 복음의 기본적인 내용과 성경의 기본적인 스토리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 진리라고 고백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우리들에게 “성경의 지식을 전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믿는 그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 삶의 진리임을, 생명을 살리는 힘이 있음을, 그리고 무너져가고 있는 이 세상에 대안을 제시해 줌을 보여달라”고 요청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부활의 증거는 말로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삶으로도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인도에서 선교사로 헌신하였던 Stanley Jones는 유난히 종교적 관심이 많은 인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었음을 회상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논리적 설명과 종교적 언어로 해석되는 복음에는 마음을 열지 않다가,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인도인들의 간증에 마음을 열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경험에 의해서 해석되고 아름다운 삶에 의해 증거된 그리스도”를 인도인들은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력이 드러나고 사랑이신 주님의 빛이 비추어질 때, 사람들은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의 선포와 가르침이 진리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믿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의 부활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상을 바라볼 때,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더 이상 어디에서도 희망을 찾아볼 수 없는 세상 속에서 교회가 진정한 대안과 대답이 되어달라고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커져가는 빈부의 격차, 해결 될 기미가 안 보이는 세계의 기아와 전쟁의 문제, 미국이든 한국이든 점점 고조되어 가는 세대간, 계층간, 지역간 갈등을 바라볼 때,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 나라의 삶, 그 팔복의 역설적인 삶, 그 낮아짐과 섬김의 삶 외에는 진정한 해답을 찾을 수 없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삶을 살아감으로, 그 길을 걸어감으로, 그 십자가를 짐으로 세상에 “예수”라는 대답을 제시할 수 있는 진정한 “예수의 부활의 증인의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