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경의 음악칼럼- 길따라 음악따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번 호 음악 칼럼에서는 필자가 2011년 마지막 주에 다녀온 캐나다 British Columbia에 있는 호말코 인디언 마을 (Homalco Indian Reserve) 선교의 여정을 따라 묵상했던 음악과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부르심

작년 여름 한국... 2001년에 미국으로 유학 오기 전 교사로 섬겼던 학생부와 수련회를 가게 되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 당시 함께하던 학생들은 이미 성장하여 교사 혹은 사역자가 되어 또 다른 어린 학생들을 섬기고 있었다. 청소년부과 함께하는 수련회가 몇 년만인지... 설레임과 기대를 안고 푸르른 여름 산 속 깊이 자리잡은 수련회 장소에 도착했다. 첫 예배를 준비하며 조용히 무릎을 꿇고 눈을 감았다. 타임머신을 탄 듯, 마치 내가 중고등 학생 때 예배드리던 그 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사춘기를 유별나게 보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자라나며 공부와 진로, 피아노와 씨름하며 나름 어린 마음에는 생각도 많고 고민도 많았던 것 같다. 그런 나를 어릴적부터 만나주셨던 하나님... 감은 눈 앞에 그동안 자라오며 내가 지나온 많은 시간들과 장소들 가운데서 유난히 떠오르는 한 곳이 있었다. 불꺼진 교회 지하실 예배당이었다. 강대상 앞에 무릎꿇고 울며 기도하던 학생시절의 내 뒷모습이 보였다. 순간, 구약에서 신약까지 말씀이 씌여진 시 공간을 초월하여 구원의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신 성령 하나님으로 하나의 맥이 통하듯이, 어린 시절 기도 가운데 하나님이 만나주셨던 내 삶의 조각들이 하나로 맞춰지면서 그 무언가 지속적으로 들려주셨던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마치 지나온 내 삶의 timeline을 보는 듯 했다. 그 하나님의 음성은 다름 아닌 이사야 43장 1절 말씀이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청소년기에 하나님 안에서의 나의 정체성을 찾게 해 주셨던 말씀, 진로를 놓고 염려하는 가운데 나를 위로하시며 강하게 붙드셨던 말씀, 유학시절 홀로 있는 것 같은 나의 텅 빈 마음을 채워주셨던 말씀, 그리고 지난 여름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 내게 들려주셨던 그 음성...

"너는 내 것이라."

 

Urban Prayer Station (UPS)

작년 여름, 코스타에서 섬겼던 중보기도팀에서 만난 김경환 간사님께서 인도하시는 Urban Prayer Station이라는 뉴욕 중보기도 운동을 알게 되었고, 그 해 가을에 PLTC (Prayer Leader Training Course)라는 온라인 기도훈련을 받게 되었다. 기도훈련이 마쳐질 즈음, UPS에서 처음 가게되는 중보기도 단기선교에 대한 초청 이메일을 보내주셨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선교라는 말은 내 삶과는 거리가 멀고, 어떤 이유든지 선교를 결단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와는 뭔가 굉장히 달라보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왠지 내가 그곳에 가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비록 아주 짧은 기간이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지만 이메일을 읽어 내려가면서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흘러 내렸다.

크리스마스 주일에 떠나 31일 아침에 돌아오는 일정... 낯선 땅에서 한 해를 마무리 하며 하나님을 홀로 대면하여 만나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다. 한번 뿐인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께선 내가 어떠한 삶을 살아내기 원하시는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떠한 모습으로 이 땅 가운데서 이뤄나가길 원하시는지 여쭤보고 싶었다. 그동안 나를 하나님의 소유라고 말씀 해 주시던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과 내가 알지 못하는 영혼들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늘 말씀과 기도에 성실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여름 이후로 어눌한 언어로는 모두 표현할 수 없는 성령님의 인도하심들은 과연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얼마쯤 이메일을 읽어 내려갔을까... 이번 중보기도 선교에서 기도 외에 열린 중보음악회를 해 달라고 현지 선교사님께서 부탁하셨다는 말씀이 있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을 컨펌시켜주시는 것 같았다.



<부르심 (feat. 주리) / 성령 2>
 

회복의 약속

중보기도 선교를 가는 곳은 의외로 캐나다 벤쿠버였다. 2010년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가난하지 않은 나라, 아름다운 자연 때문에 세계적인 관광지로 알려진 그 곳에서 도대체 무슨 선교를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중보기도 선교팀이 가게 될 곳은, British Columbia안에 있는 Campbell River에 위치한 호말코 인디언 마을이었다. 북미 전역에서 마약복용률과 자살률이 가장 높고, 정부의 보조금을 받기 위해 그저 아이들을 낳고 방치하는 성적 타락이 극심한 곳, 열악한 교육 환경과 인디언 전통으로 믿어오는 여러 신들이 자리잡고 있는 곳, 오래 전 백인들의 민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인디언 대살육과 Residential School을 통해 인디언들의 언어 말살과 가족과의 강제 분리, 여러가지 신체적 abuse를 당해 백인들과 그들이 믿는 기독교 뿐 아니라 다른 외세에 대한 적대감이 높은 곳... 그야말로 인간이 만들어 낸 정책과 죄악의 악순환으로 인해 복음이 전파되기에 너무나 어려운 조건을 가진, 영적으로 가장 척박한 지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는 그렇게 대를 이어 아픔과 고통 가운데 살고 있는 인디언들을 사랑하며 복음을 전하시는 이석천, 송유순 선교사님 가정과 이덕재 집사님 가정이 계셨다.

중보기도 선교를 준비하며 소선지서들을 묵상했다. 인디언 마을의 상황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 곳의 이야기만을 듣게되니 왠지 위험하지는 않을지 조금은 두려운 마음이 처음엔 없잖아 있었다. 말씀을 묵상하는데 왠지 내 안에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함께 아파하는 마음보다는, 그렇게까지 죄악으로 치닿을 수 밖에 없게 만들어버린 그들의 오랜 역사와, 마약 복용을 허용하는 정부, 무능력해진 인디언들에 대한 답답함과 정죄하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일어났다. 그 때 하나님께서 학개 2장, 요엘 2장, 그리고 특별히 호세아 11장의 말씀으로 나의 그릇된 마음을 진동시키시며 눈물로 회개하게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복시키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었다. 우리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아파 해 오셨는지... 말씀을 통해 그 분의 고통에 대해 알려 주셨다. 죄악된 우리를 오히려 택하신 선민인 이스라엘이라 불러주시며, 우리의 영적인 identity를 새롭게 살려주시는 사랑이 말씀 가운데 있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임이라
나는 네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자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호세아 11:8-9>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회복에 대한 약속은, 내 마음 가운데 이 전과는 전혀 다른 그 땅과, 그 곳에 있는 영혼들에 대한 소망과 기쁨으로 채워져가게 하셨다. 성령 하나님께서 내 안에 그들의 심령이 앞으로 그 어떠한 죄의 유혹 가운데서도 흔들림없는 거룩함, 정결함과 의 가운데 거하고, 그들의 마음과 삶 가운데 복음의 씨앗이 견고하게 심겨지길 간절히 소망하도록 만드셨다.



<일어나라 이스라엘 / 김도현 >
 

호말코 인디언 마을 (Homalco Indian Reserve)

벤쿠버 공항에서 25일 밤 비행기로 오는 뉴욕 UPS 팀을 만났다. 온라인으로만 들었던 이름들을 처음 만나는 얼굴들과 매치시키며 외우기에 바쁜 시간도 잠시, 벤으로 이동해 밤길을 달려 벤쿠버 온누리 교회 소속인 어느 집에서 짧은 토막잠으로 아침을 맞았다. 짧지만 따뜻했던 잠에서 깨어나, 한국마켓에 들러 음식사역에 쓸 재료들을 샀다. 호말코 인디언 마을까지는 생각보다 먼 길이었다. Ferry를 타고 바다를 건너 도착한 섬 안에서도 한참을 들어가 캄캄한 저녁이 되서야 마을에 도착했다. 해가 유난히도 일찍 떨어져 어둠에 익숙하고, 일년 중 아홉 달이 우기여서 좀처럼 쨍쨍하고 맑은 날을 찾아보기 힘들어 우울증이 많다는 곳이었다.

드디어 도착이다. 비바람이 불고 이미 어두워졌지만 마을을 돌며 짝을 지어 땅밟기 기도로 사역을 시작했다. 그 땅과 그 곳에 사는 상처입고, 마음 상한 자, 억눌린 자들을 축복하며, 그 곳을 장악하고 있는 자살과 마약과 음란과 폭력과 우울함과 무기력함으로 붙들고 있는 악한 영의 세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파하여지며, 그 가운데 가정과 영혼의 회복의 은혜가 임하길 선포하며 기도했다. 그리고 나서 집집마다 돌며 사역을 위한 초청장을 건네주었다.

그렇게 첫째 날 저녁이 지나고, 호말코의 모습은 날이 밝은 그 다음 날에야 볼 수 있었다. 호말코에서의 시간들은 중보사역, 음악사역, 음식사역, 어린이사역, 그리고 복음영접초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모든 사역은 이들이 믿는 커다란 새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우상이 있는 Community Center 안에서 진행되었다.

 

Jesus is My Superhero! Better than Spiderman, Superman, Batman, or Anyone!

낮에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율동과 게임, 창작활동을 통해 복음을 전했다. 부모님의 따뜻한 보호없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부모님의 사랑에 비유해서 이해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내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다른 이들로 부터 받는 사랑이 부족해서 처음 그 곳을 찾아간 우리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안기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마음을 열지 못하고 다가오지 못할 뿐 아니라 관심을 표현해도 때리거나 물건을 던지는 식으로 표현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의 마음의 상태와 상관없이 우리에게는 모두 너무나 해맑고 사랑스러웠다.

 

 

Community Center 안에 있는 프로젝터가 고장나서 중보선교팀이 준비해 간 프로그램을 제 시간에 상영 할 수 없게 되는 일이 생겼다. 하지만, 성령님께서는 그 순간에 다른 창작재료를 통해 아이들에게 사영리를 거듭 전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 하셨다. 대를 이어 내려져 오는 과거의 상처들로 인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못하며, 그저 다른 신 중의 하나로만 생각하는 그 땅에 사는 아이들의 입술에서 “God is Love”라는 고백이 흘러 나왔다. “Jesus, you're my superhero, you’re my star, my best friend. Better than Spiderman, Better than Superman, Better than Batman, Better than anyone”이라고 찬양하며 율동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마치 송아지가 기뻐 뛰노는 것 같았다. 억눌림 가운데 자유함을 볼 수 있었다. 가슴이 참으로 벅차 올랐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저녁에는 한국음식을 마을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음악회와 영화상영을 통해 어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목요일에 선교팀에서 계획했던 영혼구원 초청이 수요일로 당겨졌다. 목요일에는 다른 Indian Reserves를 돌며 가능한 한 많은 땅을 밟고 중보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계획이 수정되었다. 인디언 마을에서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싫어해서 선교사님 가정이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성령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들을 급하게 당겨 그 분의 계획대로 일하고 계심이 느껴졌다. 영혼구원 초청이 있는 수요일 아침, 숙소에서 함께 사도행전 말씀을 묵상했다. 영적 전쟁의 선포였다.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사도행전 14장 45-49절>

 

아침에 숙소를 떠나 호말코 마을로 향하는 길에, 오늘 하루의 모든 순간을 성령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친히 일해 주시길 기도드렸다. Community Center에 도착한 후, 모든 선교팀은 에베소서 6장 10-20절의 말씀을 거듭 나누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마음을 더욱 동여 맬 것을 결단했다. 마땅히 전해야 할 복음의 비밀을 입을 열어 담대히 전할 수 있기를 기도드렸다.

드디어 저녁시간이 되었다. 중보음악회와 “Most”라는 영화 상영이 있은 후 영혼구원 초청이 있으려던 참이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점점 다가오자 나는 그 자리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며 맘 속으로 더욱 간절하게 기도드렸다. 그 때였다. 영화를 잘 보던 아이들이 갑자기 단체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함께 따라 나갔다. 아무리 다시 들어오라고 달래보고 어름장도 놓아 봤지만, 하루 온종일 그 안에서 있었으면 충분하지 더 이상은 싫다고 소리치며 반항을 했다. 캄캄하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제멋대로 뛰어다녔다. 아이들 사이에서 함께 뛰던 개 한마리가 내게로 오더니 내 주위를 뱅뱅 돌았다. 순간, 아이들의 영혼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여 구원받지 못하게 하고, 그 상황을 즐거워하며 나를 조롱하는 사단의 장난임이 느껴졌다. 아이들의 마음을 모아달라고 성령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다. 그 때 한 아이의 엄마인 Amanda라는 아줌마가 영화가 채 끝나기도 전에 유모차를 끌고 나오셨다. 뛰어놀고 있던 큰 아이를 불러 집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상황이 더 안좋아졌다. 이렇게 교묘하게 영적으로 공격하는 사단에게 화가 났다. 아침에 묵상했던 그 말씀대로, 마음 속으로 기도했던 그 간구대로 내가 과연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는지 없는지, 사단은 나를 시험하는 것만 같았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귀한 영혼들을 놓쳐버릴 수 없었다. 집으로 향하는 Amanda를 향해 사영리 소책자를 들고 뛰어갔다. 가로등 불 아래서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기도를 함께 드렸다. 가슴이 뛰면서 너무 기뻤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그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아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건물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모든 중보기도 선교팀은 마을 사람들을 한 사람씩 붙들고 복음을 전했다. 생각만으로도 아프고 치욕스러워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평생 자신의 상처를 마음에 숨겨두고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을 끌어안고, 하나님이 그 분들을 얼마나 많이 사랑하시는지를, 예수님이 그 분들의 구세주 되심을 전했다. 이 전에 그 분들을 보면 그저 안쓰러워 위로해 주었던 나의 마음과 행함이 사랑인 줄로만 알았던 나는, 그렇게 직접 다가가서 끌어안고 함께 울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어 축복하는 그 순간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의 생각과 의지로 하는 사랑이 아닌, 대가없이 부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아버지께서 한 영혼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고 극진히 사랑하시는지... 민족과 혈통과 개인의 행함과 상관없이, 우리의 죄의 무게가 더하면 더할수록 더욱 십자가의 보혈로 끌어 안으시며 덮으시고 죄로부터 건져주시길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죽음을 초월한 사랑... 내가 이만큼 너를 사랑한다고 하시며 죽으셨던 그 십자가를, 인디언을 끌어안은 어깨 넘어로 보여주셨다. 그 순간, 내가 안고 있는 그 분의 몸은 그동안 내가 살아오며 힘들면 외면하고, 고통스러우면 붙들기를 주저했던 십자가가 되어 있었다.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제서야, 태어날 때부터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어릴적부터 수도없이 습관적으로 외우고 알아왔던 요한복음의 말씀이 삶으로 깨달아졌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God So Loved the World (from The Crucifixion) / John Stainer >
 

영원한 죽음에서 건져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삶에, 성품에, 모든 인생의 가치관에 주인이 되어주시는 그 순간, 사랑을 받을만한 행함으로가 아닌 그저 하나님께서 죽을만큼 사랑하시는 영혼이기에 부어주시는 대가없는 은혜의 체험, 인디언들의 영혼 구원과 삶의 회복을 갈망하며 헌신하시는 선교사님과 집사님 가정의 모습, 대가없는 공급으로 중보선교팀을 섬기셨던 Edhaus School의 교장선생님 가정, 일인 다역을 감당하며 최전방에서 물러섬 없는 중보기도로 섬긴 UPS의 강한 기도용사들, 성령님의 이끄심에 전적인 순종의 본을 보여주신 간사님, 영혼을 위해 그토록 애타게 눈물흘린 시간들, 예수님을 영접한 후 과거 약물중독의 삶을 벗어버리고 중보기도자로 살아가고 있는 인디언들,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 아이들... 그리고,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이것이 천국이구나 싶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토록 바라시는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 드려야 할 하나님의 나라이구나 싶었다.

다음날 호말코를 떠나 다른 Indian Reserve들을 돌며 중보기도함으로 모든 사역을 마치고, 금요일 오후 벤쿠버 육지로 돌아오기 위해 다시 Ferry에 올랐다.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바다 한 가운데서 무지개를 보여주셨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걸까?... 어떠한 새로운 약속과 삶의 부르심을 우리에게 부탁하고 싶으신 걸까?

 



<The promise / 함춘호 >
 

같은 시각, 무지개가 떠있는 동쪽의 건너편인 서쪽을 바라봤다. 어쩌면 동시에 이렇게도 서로 다른 하늘의 모습을 갖고 있을 수 있을까... 하나님의 창조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 송정미 >
 

지난 며칠 동안 부어주신 모든 은혜과 감동 가운데, 빛 되시고 거룩하신... 큰 영광과 존귀를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졌다. 북미 서쪽의 땅 끝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친밀하게 나를 만나 주셨다.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께서 “너는 내 것이라”라고 나를 택하여 소유삼아 주신 그 전인격적인 부르심은, 곧 사랑이었다. 나의 영혼을 살리실 뿐 아니라 나의 삶 전체를 책임지시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그 어느 한 순간도 나라는 사람이 존재할 수 없도록 만드신 그 분의 강권적인 붙드심이었다.

하나님은 이제 그 사랑을 담대히 전하라고 나를 다시금 새롭게 부르시는 것만 같았다. 그 일에 평생 증인이 되어줄 수 있겠냐고 무지개 가운데 내게 잔잔하지만 또렷한 음성으로 묻고 계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누가복음 24:4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