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itas Vos Liberabit
 
- 김문희 (Paul)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80년대에 한국의 대학 캠퍼스 곳곳에서 흔히 보이던

구절이다. 당시 한국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진리>에

목말라했는지를 보여준다. 90년대 중후반이 되면서 이

구절은 많은 젊은이들로부터 잊혀진 듯 하다. <진리>를

포기한 젊은이들의 세태를 반영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전형적인 93학번이다. "요즘 애들"을 <'N'세대>라고 부르듯이, 매스

미디어는 우리를 <신세대>라고 불렀다. 다수의 학생들은 학생운동을 통한

사회, 정치 변화에도 관심을 잃었고, 저마다 개인적이고 현실적인 관심사로

분주했다. 흩어진 젊은이들을 비판하는 <오렌지족>같은 단어들도 나오고

"요즘 애들 문제다"하던 90년대 초반, 사회 전반에 개인주의가 확산되어

문제시되던 그 때, 나는 그 "요즘 애들"이었다.


이전의 "운동권" 선배들은 아무 생각 없는 "한심한 애들"로 우리를 봤을지

모르지만, 우리도 나름대로 <진리>에 목말라했다. 막연하게나마 <진리>가

있을것이라는 생각에 <진리>를 전하는 일을 하겠다고 나는 신문방송학을

택했다. 더 이상 선배들이 추구하는 방식의 진리는 내게는 어필하지 않았다.

사실, 20년간 교회를 다녔지만, 어느새 나의 신앙 생활은 습관처럼 굳어져

있었던지, 나는 온갖 다른것들로부터 <진리>를 찾았다. <교회 진리>말고

<다른 진리>를 열심히 찾았다. 어쩌면 <진리>를 진정한 <진리>로 알지 못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사회학이니 정치학이니 하는 수업을 수강해 보기도 했고,

더 이상 "사회 과학은 이론이고 틀릴 수도 있는거구나"하는 한계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물리학, 불교, 철학같은 과목을 들어보기도 했다. 헛수고였다.

이것저것 하다가 "학점만 깔았다". "THIS IS IT!"하는 걸 찾지는 못했다.

"내가 기자가 되어 전하겠다고 하는 <진리>가 과연 있는가" 하는 회의도

들었다. "절대적이고, 변치 않는 것, 어느곳에 적용해도 해답이 되는 것,

그런 <진리>가 과연 있는가.."


도피하려는 노력도 했다. 심각한 생각은 때려치고 그냥 "COOL"하게

살아보자면서.. 다른것들을 추구했던것도 같다. 그러면서 행복할 수 있기를

꿈꿨다.


그러나, 아무것도 나의 갈증을 해소하지 못했다. 뭔가를 갖게 되어도

뿌듯함은 잠깐 뿐이다. 해결되지않는 문제들이 참 많았다. 내가 추구하던

것들이 <진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제 나는 진리에 대한 열쇠를 찾았다.

1. 참. 진실.

2. 참된 이치, 실체.

3. 실재하는 것의 긍정, 실재하지 않는 것의 부정.

내가 태어나서 본 제일로 두꺼운 '민중서림' 국어대사전의 <진리>에 대한

정의다. <진리>는 <진리>다. 내가 알던 모르던 <진리>는 존재한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긍정할때만이 그것이 내게 <진리>로서 의미가 있다.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받은 (창 1:27)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서만, 즉, 진리를 진리라고 인정함으로서만, 참된 기쁨을 누릴수

있다. 하나님 형상대로 지어졌기 때문에 진리가 아닌 다른것으로는 우리의

갈급함은 채워지지않는다. Harvard 박사학위, PRADA 가방, Mercedez, 또,

완벽한 성격에 장동건같은 외모까지 갖춘 남자 친구가 있어도 그 자체는

우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우리는 그렇게 지음받았다.


어쩌면 아주 간단한 <진리>다. 주일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알고 있던

<진리>인지도 모른다. 다른 <진리>를 찾고 다녔던 이유는, 이 <진리>가

<참진리>요 <유일한 진리>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인 것 같다. <진리>는

<진리>기 때문에 교회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일, 공부와

가정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대화/논쟁하는 곳, 다른 사람을 미워할

때/사랑할 때 등 매 순간마다 내 마음과 생각속에서까지도 찾아져야

할 <진리>다. 교회에서만 찾는 것이고 내 삶과 연관이 없다면, 나는

감히 그것을 <진리>라고 부를 자격이 없어진다.


이번 뉴스레터는 그 <진리>, 즉, <오직 예수>에 관한 작업이다.

<무화과 나무 아래>는 우리 세대의 감각에 맞는 방식으로 <진리>를

전한다. 그래서, 나는 즐겁다. 사실 난 별 일을 하지 않는다. 임현식

형제님과 상의해 방향을 정하고, 남에게 부탁을 잘 못하는 성격이지만

얼굴에 철판을 깔고 여기저기 글을 부탁한 후 독촉정도를 하는 일이다.

막상 힘든 일은 규영이가 다 한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이메일로 도착한

글을 읽으며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기도한다. "하나님, 우리 뉴스레터가

한 사람에게라도 <진리>를 전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인터넷>의 파급효과는 엄청나다. 우리 KBS 식구들, 아니, 그저

누군가에게 우리 web-zine을 통해 <진리>가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혹시라도, 내 또래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북한의 젊은이들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우리 웹진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면 가슴이 벅차다.


남들이 나를 기자라고 부른다. 몇 명이나 될 지 모르지만 외부 세계와

단절된 북한 청취자들을 위해 뉴스를 쓰고 방송을 하는일이 때로는

엄숙하게조차 느껴진다. 그러나, 내가 기자로서 전하는 뉴스는 그냥

'뉴스'지 <진리>는 아니다. 우리 뉴스레터가 전하고자 하는 소식은

<진리>다. <진리>를 전하는 일에 부분이 된다는 것은 가슴벅찬 일이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