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추영규 (Paul 인도자)
'나에게 예수님은 누구이신가'라는 이 제목으로 글을

써달라고 부탁을 받고 많이 고민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판에 박힌 말로 이미 성경 공부를 통해서 매일

하는 이야기를 다만 글로만 옮겨 놓았다는 소리를

들을까 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던

상관없이 "예수님이 제 삶에 어떠한 분이신가"에 대해서


꼭 해야 할 말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에게

누구이신가"라는 질문을 제가 살아온 삶과 지금의 삶에 연결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1학년때 수양회에서였습니다.

마지막 밤에 당시 고등부 전도사님께서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영접 초청을 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겠냐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저의 마음이 열려 있어서 저는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드렸습니다. 어떤 변화가 갑자기 일어난 것은 아니었고 그 날 밤은 아무

느낌 없이 보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다음날 일어났을 때부터

하나님의 존재가 믿어졌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때부터 거의 제 나이의 20대 중반까지 예수님은 가끔 제

삶에서 생각해보는 이름 외에는 커다란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나타나셨다

없어졌다하면서, 뒷전에 물러나 계시다가 제가 필요할 때만 불러 내는

알라딘의 요술 램프에 나오는 지니와 같이 말입니다. 그전에도 성경 공부를

하긴 했었지만 삶의 변화를 본격적으로 가져오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제

삶과 자아에서 버리기 싫어하는 부분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20대 중반부터 성경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하나님의 말씀이 제 삶의 중심을 옮겨 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버리기

어려웠던 부분들이 하나 둘씩 예수님께 삶을 드리면서 비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예수님과 함께 첫인사를 나누고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마치 몇 십 년을 이웃에 살던 분과 처음으로

인사하듯이 말입니다.


그 후 성경 공부를 인도하게 되면서, 비로소 예수님께서 나의 삶의 주인

되시며 "예수"라는 그 이름을 들을 때 저의 무릎이 절로 꿇어지는 것을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라는 그 이름이 제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제 인생의 남은 부분을 다 걸만큼 더 가치 있는 다른 그 어떤 이름을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했을 만큼 귀한 이름입니다. 알아 가면 갈수록 처음

만났을 때부터 더욱 가까이 지냈더라면 하고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인생을 허비했다는 생각과 함께 이제라도 더욱 더 알기 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동시에 듭니다.


저의 아들 이영이는 가끔 자기 엄마에게 "엄마, 아빠 나쁘지?" 라고

이야기합니다." 엄마가 왜냐고 물으면 "아빠는 맨날 맨날 공부만 하고

이영이하고 안 놀아 줘"라고 대답합니다. 저녁 식사 이후에 금요일 성경

공부 준비를 위해 공부방에 혼자 올라가서 준비를 하노라면 가끔씩

이영이가 문을 살짝 열고 들어 와서 같이 놀고 싶은 마음에 "아빠 뭐해요?"

하고 묻습니다. 제가 이영이에게는 아직은 그래도 같이 놀기에 꽤 괜찮은

상대인가 봅니다. 그러면 같이 놀아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도 그렇게

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라는 그 이름이 저에게는 너무나 귀하고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이 너무나 귀해서 그 이름을 아직도 알지

못하고 있는 세상 사람들 중에 단 한 명에게라도 더 전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 명이라도 더

예수님을 알게 된다면 비록 이영이와는 주말에만 많이 놀아 줄지언정

그렇게 나쁜 아빠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다음에 이영이가 커서 자신의

삶에서도 예수라는 이름이 아주 귀하게 되면 아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테니까요.